김인수 - 한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 교수생활을 할 것인가? 실험기자재

다음의 글은 연구의 물적환경뿐 아니라 인적환경이 매우 열악한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질높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에 대해 많은 교훈을 주는 글이라고 생각된다. 김인수 교수님은 2003년 아깝게 돌아가셨다.

한국경영학회(2002.02)
상남경영학자상 수상강연

[한국경영학회] 금년에 상남경영학자상을 수상하게 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의 김인수 교수님은 그 동안 50여 편의 논문을 국제적 학술지에 게재하였고 30여 편의 논문을 국내학술지에 게재한 국내보다는 국제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한국의 경영학자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분야의 학자 중 가장 많은 논문을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논문은 조직이론, 혁신이론, 학습이론, 경영전략, 지식경영 등 경영학 분야 뿐 아니라 산업경제학, 과학기술정책 등 거시적인 측면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11권의 저서 중 Harvard Business School Press에서 1997년에 출판한 [Imitation to Innovation]이라는 책과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서 2000년에 출판한 [Technology, Learning, and Innovation]이라는 편저서는 영어 권 여러 대학원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으며 전자의 경우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1998년에 세종문화상 (학술부문)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여러 회원들이 지난 2월16일 상남경영학자상 수상식에서 행한 그의 강연을 다시 접하고 싶다는 부탁을 해왔기에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홈페이지에 올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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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인수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먼저 훌륭한 선배들도 많이 계신데 가장 권위 있는 상남경영학자상을 부족한 저에게 수여해주신 한국경영학회와 심사위원회에 감사 드립니다. 이러한 상을 제정하여 경영학자들을 격려해주시고 한국 경영학의 발전을 지원해주시는 LG그룹에도 아울러 감사의 뜻을 전하며 무궁한 발전이 있길 기원합니다. 또한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연구생활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신 제가 몸담았던 고려대학과 KAIST의 여러 동료 교수님들께도 함께 감사인사를 전합니다.

수상강연으로 무슨 말씀을 드리는 것이 후배 교수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까 생각해보다가 여러 해 전 한국공학교육학회에서 [한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대학교수의 직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을 부탁 받고 공과대학 교수들에게 이야기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반응이 대단히 좋았습니다.

오늘 제가 받은 상이 학자로서 연구와 교육에 끼친 공을 인정하여 주는 것이라니 제가 어떻게 학자로서 연구와 교육생활을 해왔는지 그 때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씀 드릴까 합니다. 후배 교수님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

교수가 되기까지

저는 많이 헤맨 인생을 살았습니다. 가정 형편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14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CEO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의 마지막에 야간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졸업반이었던 34살에 미국정부가 주는 동서문화센터장학금을 받고 미국에 MBA 공부를 하려 가게 되었습니다. 국민학교 졸업 후 공부만 하게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는 마케팅을 전공하였고, 석사학위만 하고 귀국할 예정이었지만 공부를 해보니 공부가 제게 맞는 다는 것을 30대 후반에 접어든 그 때에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경영은 골머리만 아프지 별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데 비해 공부는 재미가 있는 반면 별로 골머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마케팅 과목은 많이 들은 편이지만 그 외 다른 분야도 좀 더 접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기에 박사학위 과정 입학원서를 10곳에 내면서 대학마다 전공 분야를 다르게 신청했습니다. 그 중 가장 좋은 조건의 장학금을 주겠다는 곳이 Indiana University여서 그곳에서 생산관리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의 생산관리는 생산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고 Operations Research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수학과 컴퓨터를 사용한 응용수학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그것만 공부해서는 경영학을 제대로 알 수 있는 것 같지 않아 전공을 재무관리로 바꾸었으나 그곳에서도 수학으로 최적화하는 것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조직이론으로 전공을 바꾸었습니다. 결국 경영학 중 가장 계량적인 전공에서 가장 정성적인 전공으로 극에서 극까지 옮겨온 셈입니다. 학위는 조직이론으로 받게 되었고, 학위논문은 그 당시 새로 대두되기 시작한 혁신이론을 중심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은 부분에 대해 폭 넓게 공부한 것이 후에 많은 영역에서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후 MIT에서 3년 동안 기술혁신정책을, KDI에서 2년 동안 산업정책 등을 연구한 후 늦깍기 42살에 KAIST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5년 후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47살에 고려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교수생활 초기에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따라 지난 20년 이상 생활해왔습니다.

교수생활의 원칙 설정

우선 교수가 할 수 있는 서비스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국제적 무대에서 경쟁적으로 새로운 이론을 개발하는 학문활동을 하는 것
2. 학부 교과서를 잘 쓰는 것
3. 학교와 기업에 가서 강의를 잘 하는 것
4. 기업의 문제를 풀어주는 consulting service를 잘 하는 것
5. 대학, 정부, 사회에서 보직 등 사회활동 등을 잘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지만 한 사람이 모든 분야를 다 제대로 할 수는 없고 더 나아가 특출할 수는 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바와 같이 전략적 focus와 차별화를 하기로 정하고 그 focus를 첫번째에 맞추기로 정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목적함수를 Max (공부하는 시간)로 정하고, 다른 것은 모두 최소화 하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1. 기업강의: 사장급 이상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거부하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기업연수 대학교수명단에는 제 이름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2. 기업 프로젝트: 연구논문을 쓸 수 있고, 박사, 석사학위 학생이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연구과제가 아니면 거절하기로 했습니다.
3. 기업Consulting: 공부가 될만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4. 학교나 사회에서의 보직: 가능한 한 최소화하기로 했습니다.
5. 사회활동: 아주 선별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6. 기본원칙: “다른 사람이 잘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했지만 우리 사회가 저를 가만 두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정함으로써 방향 감각을 잃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KAIST 재직 당시에는 매주 한 과목만 가르쳤고, 대학원생들의 논문을 지도하는 것 외에는 거의 잡일이 없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환경을 마련해준 KAIST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연구라는 무거운 Roller를 그 때에 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고려대학으로 옮겨온 후에도 계속 굴리는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를 중단해야 할 3가지 사건

그러나 연구를 그만 둘 수 밖에 없는 사건이 3번 생겼습니다.

첫 번째는 KAIST가 대덕으로 이사가게 되었을 때, 개인적 사정 때문에 고려대학으로 옮겼습니다. 그 당시 고려대학에서는 주 16시간 강의에 잡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20시간 이상 가르쳐야 했던 것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요즘은 고려대학에서 매주 6시간 가르치는 것으로 사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주 16시간에 많은 잡일들이 있던 그때 연구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되어 연구를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두 달 정도 지나니 점차 나태해지기 시작했고, 깊고 분석적인 사고를 하기가 싫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때 문득 앞으로 18년을 더 강단에 서야 할 터 인데,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를 주 2-3일로 다 미루고 주 2-3일은 숨어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KAIST때 평균 년 2-3편 정도의 논문을 외국학술지에 게재했던 것과 같이 고려대에 온 후에도 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없어서 연구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만 잘 수립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오늘날 만큼 학교가 연구 업적을 요구하지 않던 시절이었으므로 결국 제 삶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1989년에 협심증 증상으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입원 후 퇴원하게 되었을 때 의사의 충고를 따라 앞으로는 쉽게 살기로 마음에 결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 두 달 정도 지나니 또 나태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심각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교수직을 계속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교수직을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남은 14년을 위해 다시 연구생활을 시작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것입니다. 다시 연구 생활을 계속하기로 정하고 이전에 쓰다 그만둔 논문을 다시 잡아 심장이 견디어 내는 범위 내에서 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결국 서서히 연구생활에 박차를 가한 나머지 옛날과 마찬가지 수준의 연구 업적을 내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1996년 봄에 제가 극구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출연연구소의 소장으로 임명 받은 일입니다. 방학도 없고, 아침 조찬부터 저녁 늦게까지 과중한 업무 때문에 연구 생활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3년 임기동안 연구생활을 놓으면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연구를 계속하기 힘들 것 같은 판단이 들어, 주말에 논문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장 바쁜 소장이 계속 외국학술지에 연구업적을 내니 50여명의 박사 연구원들이 ‘학술지에 낼 연구를 따로 할 시간이 없다’고 불평하다가 그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연구생활의 초기에는 저의 수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상당히 계량적 분석을 하는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물은 Management Science,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등 Top journal에 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가설 검증을 한 이러한 연구들에서 배운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 방법론을 가지고는 한국적 특수성을 담아내는 것이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계량분석적 연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미시적 수준에서 가설 검증하는 그런 연구보다는 좀 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한국적 현장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새로운 이론과 가설을 개발하는 개척적 연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 동안 10개 이상의 산업에 산재해 있는 200여 개 이상의 기업을 심층 연구해왔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현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박사학위 받은 후 초기에는 기업문제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는데 많은 기업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난 후에는 기업의 문제를 진단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면허를 받은 후에도 여러 해 동안의 수련과 임상경험을 축적해야 전문의가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한국의 경영학 연구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논문을 쓰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배경에서 입니다.

연구비 확보기준

국내 학술기관에는 연구비 신청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습니다. 학교에서 몇 년에 한번씩 주는 자동적인 연구비 이외에는 국내연구비를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연구 결과에 대해 품질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로 외국에서 연구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Proposal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일단 제 이름이 알려지게 되니까, “무엇, 무엇에 관해 논문을 하나 써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됩니다. 대부분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개척이었고, 그 결과 저로 하여금 새로 발전하는 분야에 계속 진입하게 하였으며 많은 공부를 하게 하였습니다. 제가 그렇게 해왔던 것은 제 선택이 아니라 외국의 Funding 때문이었습니다.

외국의 연구비는 우리 나라 연구비에 비해 박한 편입니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대해 피곤할 정도로 힘들게 품질관리를 하기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연구결과를 좀 더 논리적으로 정리하니 국제적 학술지에 발표하는 것이 가능해지더군요. 결국 일을 저질러 놓고 그 다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고 나면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게 된 것입니다. 즉, 자기 스스로에게 위기를 조성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학문적으로 한 단계 전진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교육에 대한 원칙

KAIST에서 고대로 옮겨 왔을 때 한 학부 학생이 “선생님의 강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2-3년 가지 않아 진부해지더군요”라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는 그 후 7년 동안 제 밑에서 공부하여 박사학위까지 받았고, 지금은 한양대학에서 전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제자 처럼 7년 계속 제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제 강의가 지속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해가 아무리 지나더라도 처음 강의 듣는 학생에게는 충격적 강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강의를 준비해야 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는 아닙니다. 많은 학생들이 소문을 듣고 강의실에 들어왔다가도 첫 시간에 한 학기 동안의 강의계획안을 나누어주고 설명하면 그 다음 시간에 썰물같이 대부분 빠져나가 버립니다. 학생 수가 10명이 되지 않아 폐강한 경우도 여러 번 있습니다. 한번은 세 학생이 수업에 들어왔기에 교학과에 가서 폐강하겠다고 했더니, 체육 특기생 7명이 수강자로 등록되어있어서 폐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세 명을 데리고 한 학기를 수업했습니다.

저는 일방적으로 강의 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미리 예습을 철저히 해야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숙제를 해야 하며, 수업시간에는 계속 토론식으로 진행합니다. 또한 학부도 암기를 요구하는 중간시험이나 학기말 시험을 보지 아니하고, 대신 분석력을 요구하는 논문과 기업현장 연구결과를 제출하도록 합니다. 학생들의 평이 “그 교수님의 과목은 다른 두 과목 듣는 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점을 잘 주는 편도 아닙니다. 그러니 학생들이 기피하는 교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2-3년 동안은 경영을 처음 접하게 되는 신입생에게 경영학에 대한 깊은 흥미를 넣어주기 위해 수백명의 학생들에게 대단위 강의를 해주기로 자원했습니다. 이 경우는 일방적 강의 이외의 방법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2,500년 전 노자가 말한 리더십 이론에 보면, “부하가 경멸하는 리더는 사악한 리더요, 부하가 존경하는 리더는 괜찮은 리더요, 부하로 하여금 ‘자기들이 다 해냈다’고 신나게 만드는 리더는 위대한 리더” 라고 합니다. 참으로 깊은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명 강의를 하면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을지는 몰라도 훌륭한 교수가 되지 못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만듦으로써 학생들이 엄청나게 학습하도록 하는 교수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할까요. 학기가 끝난 후 학생들의 평가는 대단히 좋은 편입니다.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연구에 관해

그 동안 외국 학술지와 단행본에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국내 학술지에 30편 정도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렇게 다작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50편 중 Top journal에 나온 것이 10편 정도입니다. Top journal에 나온 것은 10-20년이 지난 요사이도 다른 학자들의 논문에 계속 인용이 되고 있는데 비해 Secondary journal에 나온 것들은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그럴 줄 알았더라면 작전을 다르게 했을 것입니다. 나머지 40편 중 적어도 20편 정도의 경우 좀 더 분석적으로 다듬었더라면 Top journal에 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회가 됩니다. 다작보다는 좋은 논문을 Top journal에 내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외국 학자들이 기억하는 것도 Top journal에 나온 몇 가지 논문이지 다작은 아니었습니다.

영어로 여러 권의 책을 써서 Harvard, Cambridge 등 대학을 통해 출판한 것은 잘 한 것 같습니다. 한 논문에서 다루지 못하는 것을 책을 통해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논문은 500명 정도의 학자들이나 읽는데 비해 책은 엄청나게 넓은 독자층을 갖게 되어, 그 책이 저를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에 관해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더 많은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분이 그 동안 부족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좀 더 따뜻하게 학생들을 감싸줄 것을 잘못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곧 강단을 떠나게 되니 새로운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다시 한번 제게 과분한 상을 주신데 대해 관계 학자들에게 감사 드리면서 제 강연을 끝내겠습니다.

원문: http://kasba.dure.net/pds/conference/2002_winter/PDF/상남수상강연.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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