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3일
파시즘에 대한 몇 가지 접근법들.
1. 비판적 실재론의 실재-현실-경험(real-actual-empirical)이라는 존재론의 세 층위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구조, 체제로서의 파시즘, 제도와 전략 혹은 실제로 행사되는 권력으로서의 파시즘, 그리고 경험되는 것, 즉 이데올로기로서의 파시즘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층위 구별의 장점은 파시즘의 추상적 모델로부터 파시즘의 특수한 형태를 구별하는 것, 혹은 본질로부터 현실태와 현상을 구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시즘이 선전하고 스스로 이렇다고 하는 파시즘의 이데올로기와 파시즘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구별 가능해진다. 그 결과 실제로 존재했던 파시즘 체제가 사실은 말 그대로 전체주의적으로 통합된 국가라기 보다는 대단히 불안정한 국가였다라는 것을 이해하게 함으로써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공식적인 표명이 없는 파시즘 전략과 체제에 관해서도 사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2. 우리는 전략-관계론적 관점에서 특정한 전략적 선택성을 가진 체제로서의 파시즘과, 특정한 목적지향을 가진 운동으로서의 파시즘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체제로서의 파시즘 분석은 그것이 자본주의와 가지는 관계를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고, 운동으로서의 파시즘 분석은 그것이 어떻게 등장하고 권력을 잡을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3. 우리는 파시즘의 수단과 목적(비록 둘은 구별이 힘들지만)을 분석적으로 구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파시즘의 특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수단/운동에서인가 아니면 목적/체제/전략에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하냐에 따라 파시즘의 지적 기원(니체인가 헤겔인가)을 명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의 합리성(도구적 합리성인가 가치합리성인가)을 평가함으로써 그것의 역사적 위상을 적합하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파시즘이 추구하는 정도의 민족주의나 전체주의가 비파시스트 체제에서도 발견된다면, 파시즘의 특색, 본질은 오히려 그 운동이 지닌 특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며 그 기원은 헤겔보다는 니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물론 이러한 판단은 헤겔이나 니체의 사상 자체 보다는 사회에서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에 관한 것이다). 또한 만약 파시즘에 지배적인 합리성에 도구적 합리성에 가깝게 되고 따라서 매우 근대적-자본주의적인 현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가치합리성이 지배적이라면 근대에 대한 반작용의 측면도 강조해야 한다(물론 그것이 반드시 ‘반(反) 혹은 전(前)근대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파시즘에는 여러 가지 특성들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우리는 파시즘의 제형태로부터 파시즘의 이념형(예를 들면 신문에서 사용되는 6하원칙에 따라,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하였나를 묘사)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적 극단화의 방법은 필연적으로 파시즘의 개념이 대단히 모순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파시즘의 주체는 대중운동이지만, 그로 인해 혜택을 받은 것은 독점자본이며, 단지 급진 우파뿐 아니라 일부 전향한 좌파 또한 포괄하였고, 그 시기를 단지 전간기에 국한시킬 수만은 없고 전후의 시기에도 적용 가능해야 하며, 서유럽이 원조지만 동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그와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였으며, 그 이데올로기와 정책에는 합리적/비합리적 혹은 계몽주의적, 반계몽주의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고, 준군사조직과 폭력에 의존하고 기존의 국가기구를 일정 정도 해체, 무력화하는 한편, 새로운 기구를 창설하였으며, 한편으로는 근대적인 발전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발전에 대한 반작용이며, 보수파뿐 아니라 좌파의 실패에 기인함으로써 좌파와 우파의 속성을 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Passmore (2002)의 주장 중의 하나는 이렇게 파시즘이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모순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순이 파시스트체제 안에서 현실적으로 어떤 식으로 관리되었는가(예를 들면 잠정적으로 관리되었는가, 아니면 다소 장기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관리되었는가), 그리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이해할 것이냐(즉 모순되는 경향들 사이에 어떤 위계질서가 발견되느냐)이다. 이런 점에서 층위의 구별이나 모순간에 위계질서를 부여하려는 노력 없이 파시즘을 서로 다른 혹은 모순적인 경향의 집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Passmore의 경험주의적 개념화/접근방식은 불완전하다.
덧. 비판적 실재론과 전략관계적 접근법에 대해서는 이전의 블로그 참조.
# by | 2004/12/23 03:08 | 실험실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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