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 신자유주의의 환상과 현실"에 대한 오해에 대하여 실험실

지주형,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 신자유주의의 환상과 현실”, <경제와 사회> 104 (2014년 겨울), 14-55.

https://dl.dropboxusercontent.com/u/17704840/%EC%A7%80%EC%A3%BC%ED%98%95%20-%20%EC%84%B8%EC%9B%94%ED%98%B8_%EC%B0%B8%EC%82%AC%EC%9D%98_%EC%A0%95%EC%B9%98%EC%82%AC%ED%9A%8C%ED%95%99%20%5B%EA%B2%BD%EC%A0%9C%EC%99%80%EC%82%AC%ED%9A%8C104%202014%5D.pdf

 

이재훈, “서해훼리호와 세월호 사이 21한국엔 무슨 일이?”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71892.html?recopick=5

 

백승연, “세월호 참사는 신자유주의 때문인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673801.html

 

백승연 씨가 필자의 논문에 대해 간략한 비판을 한겨레 신문에 투고했다. 오해와 무지로 가득한 글이다. 읽을 수 있는 언어로 쓰여 있다고 자신이 그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여러 번 반추해보지 않고 떠오른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백승연 씨의 글은 바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사회학자들이나 철학자들에게는 시비가 자주 붙기 마련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하듯이 그들의 분석대상이 되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귀 뿐만 아니라 혀가 있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혀가 똑같이 바른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백승연 씨의 글은 사회과학에 대해 무지한 일반인이 얼마나 잘못된 논리를 전개해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는 글을 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매우 좋은 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학자가 그러한 글에 반드시 응답할 이유는 없다. 무사는 덤벼드는 시정잡배에 함부로 칼을 휘두르기 보다는 피해가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필자도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무사가 시정잡배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까지 참을 만큼 성인군자가 되지는 못한다. 특히 주변 지인들이 여럿 백승연 씨 글에 대해 관심을 표현하니 해명을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목적은 백승연 씨에게 응답하는데 있지 않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그의 글을 읽고서 필자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단순화시켰다거나 비정규직 신분을 책임감 부재와 잘못 연관지었다고 오해할 분들, 특히 학문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지인들에게 필요시 보여주는데 있다. 경고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읽기에 까다로울 것이다.

 

1. 백승연 씨의 비판과 그에 대한 간단한 답변

 

먼저 백승연 씨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하겠다.

 

지 교수는 세월호 승무원 대다수가 단기계약직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비정규직 선원과 선장한테는 애초부터 책임감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이라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비정규직이 직장 충성도가 낮을지는 모르나 직업윤리가 낮아야 할 이유는 없다. 뛰어난 직업윤리를 보여준 이가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정규직 노동자가 무책임 했다는 것은 비정규직/정규직과 직업윤리 또는 책임성은 무관하다는 증거이다.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주장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 요컨대 세월호 참사에서 선원과 선장들의 무책임함은 그들의 직업윤리 부재에서 유래한 것이지, 고용조건에 따른 직장충성도와는 별 관련이 없다. 네덜란드나 미국의 예에서처럼 신자유주의 정부라도 능력이 있다면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동시에 적절한 조처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대통령의 한심하고 치졸한 행동이 신자유주의라는 거창한 이념적 프로젝트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대처 과정에 대한 평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단순화하는 것은 근거나 논리가 엉성하다.

 

그의 주장은 얼핏 보기에 그럴 듯하다. 물론 필자의 논문이 완벽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백승연 씨가 주로 이의를 제기한 부분, 즉 비정규직 신분이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필자만의 견해가 아니며 필자가 논문에서 해당 부분의 근거로 사용한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협의회의 견해이기도 하다. 필자 개인이라면 몰라도 그가 비판하는 변호사들을 포함한 진보진영의 논리가 그렇게 허술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뜯어보면 백승연 씨의 주장은 겉보기와 달리 대부분 잘못되었다. 백승연 씨의 주장은 필자의 주장에 대한 1) 오해와 2) 어설픈 사회과학적 지식에 기초해 있다.

 

2. 백승연 씨의 불성실한 독해

 

백승연 씨의 주장은 필자의 논문에 대한 불성실한 독해에 근거해 있다. 첫째, 백승연 씨는 글의 마지막에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단순화하는 논변은 정부와 해경의 무능을 질타하며 정부의 축소와 시장의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장과 방향만 다를 뿐 근거가 엉성하다는 점에서 논리의 수준은 같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단순화하는 논변을 전개하지 않았다.

 

첫째, 필자의 논문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한 논문이 아니다. 논문의 포인트는 (지금 보니 오해를 초래할 부분, 즉 불명확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세월호 참사가 신자유주의 때문에 일어났다는, 너무나 흔한, 별로 논문으로 쓸만한 가치도 없는 주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포인트는 그것을 전제한 후에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는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 사회 퇴보에 대한 인식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에 있었다. 그 때문에 논문의 제목은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 신자유주의의 환상과 현실이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와 세월호 참사의 연관관계를 충분하고 자세하게 논증하지 않았다. 좀 더 자세히 논증할 수 있었다면 백승연 씨와 같은 이의가 제기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의 이의 제기는 일차적으로 필자가 쓴 논문의 목적에 대한 오독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하다. 그렇다면 논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필자가 실제로 논문 앞에서 쓴 말은 다음과 같다.

 

서해훼리호 침몰과 같은 다른 재난사고와 달리 세월호 참사가 이렇게 예외적으로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발전한 까닭은 무엇일까? ... 필자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까닭은 세월호 참사의 전모를 밝히거나 세월호 유가족의 시위와 요구의 전개 및 그에 대한 사회적 지지의 확산을 낳은 사회운동의 동학을 밝히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서해훼리호 침몰 등 다른 참사들과 구별되는 세월호 참사의 예외적 정치화로부터 현재 우리 사회의 좌표를 읽는데 있다.

 

더구나 위에 보이듯이, 필자가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원인으로 신자유주의를 꼽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원인이라고는 어디서도 주장하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화가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논문의 목적은 세월호 참사의 전모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를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단순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단순화한 것은 오히려 필자의 논문을 곡해한 백승연 씨이다.

 

둘째, 필자는 논문 어디에서도 정부와 대통령의 한심하고도 치졸한 행동이 신자유주의라는 거창한 이념적 프로젝트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보지 않았다. 필자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이념적 프로젝트로만 국한해 쓰지 않으며,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프로젝트가 정부와 대통령의 무책임함을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기획"이라니! 논문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러한 함의를 가진 부분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백승연 씨 자신의 얄팍한 신자유주의 이해에 바탕한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와 국가의 무책임함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 문제를 다룬 논문(필자는 그 논문을 인용했다)이 이미 있기에 논문에 특별히 설명을 더 하지 않았지만 이 글의 뒷 부분에서 내 나름대로 추가설명을 덧붙이려고 한다.

 

셋째, 백승연 씨는 높은 직장충성도가 반드시 직업윤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요컨대 세월호 참사에서 선원과 선장들의 무책임함은 그들의 직업윤리 부재에서 유래한 것이지, 고용조건에 따른 직장충성도와는 별 관련이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마치 필자가 논문에서 비정규직 --> 낮은 직장 충성도 --> 직업윤리 부재로 설명을 전개한 것처럼 주장한다. 직장 충성도가 높아도 직업윤리가 부재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옳지만 필자는 논문 그 어디에서도 비정규직의 직업윤리 부재가 낮은 직장 충성도에 기인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심각한 오독이다. 뒤에 보겠지만 필자는 다른 식으로 비정규직과 책임감 부재를 연관 짓는다. 낮은 직장 충성도와 직업윤리 부재를 연결시킬 수 없다는 백승연씨의 비판은 비정규직과 책임감 부재를 연관 짓는 여러 설명 중 하나의 설명에 대한 비판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것만으로는 비정규직이 책임감이 낮다는 주장을 반박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3. 백승연 씨의 아마추어 사회학과 철학

 

백승연 씨의 주장은 철학적으로나 사회과학적으로 허술한 토대 위에 서 있다. 비정규직이라서 책임감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주장은, 그것에 대한 논거가 논문에서 충분히 제시되지 않은 것일 수는 있어도, 곧바로 논리적 비약인 것은 아니다. 백승연 씨가 이 주장이 논리적 비약이라고 보는 까닭은, 비정규직과 직업윤리는 무관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견해를 정규직이 무책임하고 비정규직이 책임감 있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로 뒷받침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정규직의 낮은 직업 충성도가 아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적시하지 않은, 그러나 비정규직 탓은 아닌) 직업윤리 부재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정규직이 무책임하고 비정규직이 책임감 있게 행동했다는 사실로부터 비정규직과 직업윤리가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는 것이야 말로 논리적 비약이다. 더구나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을 그들의 낮은 직업윤리로 설명하는 것은 동어 반복에 가깝다. 직업윤리 부재란 곧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

 

우선 비정규직이 직업윤리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명제는 그러한 반례로 간단히 반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순진한 형태의 실증주의적 반증주의이다. 일례로 백승연 씨는 정규직이냐 아니냐가 직장 충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명제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규직이어도 충성도가 낮은 경우, 비정규직이어도 충성도가 높은 반례는 우리 주변에서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백승연 씨는 비정규직이 직업윤리에 나쁜 영향을 준다는 명제는 반박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비정규직이 직장 충성도를 낮춘다는 명제는 타당한 것으로 생각하는가? 하나의 명제를 간단한 반례로 반박할 수 있다는 것만큼 순진한 과학철학은 없다.

 

다음으로 백승연 씨는 사회학적 설명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 사회학적 설명은 개인의 행동이나 윤리를 설명하지 않는다. 사회학적 설명은 개개인의 행동이나 윤리를 설명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개개인의 윤리는 애초에 구조적 변수로 온전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사회학적 설명은 개인의 행동이나 윤리 등을 설명하는 대신 개인들과 구별되는 집합적 현상(뒤르케임의 표현을 따르면, 개인적 사실이 아닌 사회적 사실’)을 설명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집단의 행동이나 윤리의 패턴이나 추세를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행동이나 윤리에 대한 몇 가지 반례는 사회학적 설명에 대한 반박이 될 수 없다.

 

비정규직이어서 책임감 있는 행동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사회학적 명제로서, ‘모든 비정규직은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수 없다거나 모든 정규직은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것이라는 명제와 동치가 아니다. 그것은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집단은 책임감이 낮은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명제이다. 이러한 명제를 몇 가지의 반례만으로 반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우리가 세월호 사건에서 본 것은 주로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 아닌가. 이것이 왜 논리적 비약인가? 직업형태가 직업윤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닐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월호 선원들의 무책임함이 낮은 직장 충성도보다는 직업윤리 부재 때문이라는 백승연 씨의 주장은 옳다. 그러나 무책임을 직업윤리 부재로 설명하는 것은 동어반복에 가깝다. 그러한 직업윤리 부재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백승연 씨는 설명하지 않는다. 즉 그는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집단은 책임감이 낮은 경향을 보일 것이라는 사회학적 명제에 대해 충분한 반례를 제시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세월호 선원들이 보인 무책임함을 비정규직이 아닌 다른 보다 강력한 원인에 의해 설명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그는 무책임과 직업윤리의 부재가 비정규직과 무관하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서 전혀 반박 증거가 될 수 없는 개인적 반례 외에는 다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집단은 왜 책임감이 낮은 경향을 보일까? 적어도 필자는 앞서 설명했듯이 어디서도 백승연 씨가 비판하는 설명방식, 비정규직 --> 낮은 직장 충성도 --> 직업윤리 부재로 그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필자가 생각하는 설명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면 비정규직에게 부여되는 권한과 책임은 정규직보다 작다. 따라서 집합적 수준에서책임감을 키우기를 기대하기 어렵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세월호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된다. 그들이 사고가 났을 때 승객 대피보다 본사와의 연락에 더 신경 썼던 이유이다. 더구나 문제가 책임이 아니라 책임 있는 행동이 되면 그것은 더욱더 집합적 수준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된다. 필자가 논문에 쓴 문장을 인용한다.


그들이 이렇게 무책임했던 것은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월급 270만 원에 1년 계약직이었던 선장뿐만 아니라 갑판부와 기관부 선원 17명 가운데 12명이 4개월에서 12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이었고 임금도 다른 해운사에 비해 20~30퍼센트 정도 적었다. 이에 따라 선원들의 높은 소속감과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게다가 그들은 제대로 된 안전 교육과 해양사고 훈련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민변, 2014: 27, 155~160). 안내방송을 담당한 승무원은 선박 사고시의 탈출 요령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930분경 선장과 다른 선원들이 탈출하여 더 이상 지시가 없었는데도 고지식하게 배가 80~90도로 기운 10시경까지 대기하라는 방송을 계속해 참사를 키웠다(서울신문,2014.5.10.).

 

첫 문장을 보면 필자가 선원들의 무책임함이 비정규직 때문인 것만으로 단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석이 있다라는 것은 그러한 해석이 있으며 기껏해야 그것에 일리가 있다는 뜻이지 그것을 유일무이한 원인으로 파악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음 문장들을 보면 백승연 씨가 필자의 논문을 곡해했다는 것이 더 잘 드러난다. 무책임한 행동의 원인에는 단지 비정규직이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안전교육이나 해양사고 훈련의 결여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윤리적이고 책임있는 행동은 윤리적이고 책임있는 생각이나 감정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실제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원인이 된 신자유주의의 일부일 뿐 전체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현실에는 비정규직, 그리고 그것이 낳은 낮은 직업윤리와 책임감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자원의 부족이 포함된다.

 

백승연 씨는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주장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의문 또한 논리적이지 못하다. 그러한 주장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문제는 오히려 비윤리적인 비정규직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이지 그 반대로 그들을 차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비정규직에게 높은 책임감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해서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했다. 집단에 대한 사회학적인 인과적 설명과 개인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구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으로 신자유주의의 각자도생을 체화한 그들에게는 일에 대한 책임도, 승객들에 대한 책임도 없었다(물론 최소한의 도리도 하지 않은 그들에게 그들의 무책임이 교육과 훈련부족 때문이라는 면죄부를 줄 필요는 없다).

 

물론 이 문장에는 그들의 무책임이 교육과 훈련부족 때문이 아니라고 오해될 소지가 약간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들의 무책임이 교육과 훈련부족 때문이라는 면죄부를 줄이 아니라 그들의 무책임이 상당부분 교육과 훈련부족에 기인하지만 그렇다고 면죄부를 줄이라고 썼어야 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반면 백승연 씨가 우려하는 것과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곧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일 수는 없다. 비정규직에서 발견되는 무책임한 경향성은 차별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백승연 씨는 만약 비정규직이 무책임하다고 판명되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정당하다고 볼 것인가? 비정규직 차별은 책임/무책임과는 독립된 문제이다.

 

끝으로 네덜란드나 미국과의 비교에 대해 언급하겠다. 백승연씨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 같다. 네덜란드나 미국이 한국과 동일한 신자유주의이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어설픈 대처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하고 무능한 대처에 대한 원인이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참으로 어설픈 비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의 원인은 다양한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의 사건은 하나의 원인에 의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곳에서 사건 A의 원인이 A‘이 아니라고 해서 이곳에서 일어난 사건 A의 원인이 A’가 아니라고 볼 근거는 없다. 또한 다른 곳에서 원인 A‘가 있었지만 사건 A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A’가 사건 A의 원인이 아니라고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앞에서 말했듯이 한두 가지 사례로 반증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A’의 작동을 방해하는 B라는 요인이 있을 경우 A’A라는 사건을 결과하지 않을 수도 있다(~A). 간단히 말해 네덜란드나 미국도 신자유주의인데 한국과 다르게 사고에 대한 처리와 대응이 일어났다고 해서 신자유주의가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이 아니라는 주장이 입증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신자유주의 정부(A')라도 능력(B)이 있다면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동시에 적절한 조처(~A)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백승연 씨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정부(A)인데  능력이 없다(~B)면 적절한 조처를 취하지 않았을 것(A)이라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논문에서 필자의 논지는 바로 세월호 참사를 낳은 무능력의 근원에는 구조작업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외주화가 있었다는 것이었다(A' --> ~B --> A). 백승연씨는 논문의 기본 논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을 한 것이다. 

 

더구나 미국에서 같은 일이 일어났으면 미국 정부는 더 잘 했을 것이라는 것은 가정일 뿐이다. 비교를 위해서는 그런 가정을 하기 보다는 미국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가 어떻게 일어나고 처리되었는지 살펴 보는게 더 좋을 듯 하다. 미국의 카트리나 참사는 이후 재난대비와 방지 대책의 측면에서 한국과 다르게 매우 진전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이외의 측면에서는 재난의 인재로서의 성격과 정부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측면에서는 오히려 세월호 보다 더 심했다는 평가까지 보인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많은 이가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들고 있다. 물론 카트리나 참사를 두고서도 다양한 해석이 있다. 하지만 이로써 분명한 것은 백승연 씨의 생각대로 미국이라면 어땠을까라고 가설적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세월호 참사와 신자유주의의 연관이 자동적으로 반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질문으로부터 미국이라면 달랐을 것이다라는 답을 내리고 그러므로 신자유주의와 세월호 참사의 연관은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미국이라는 나라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백승연 씨에 의하면 필자가 채택했다는 정부와 대통령의 한심하고 치졸한 행동이 신자유주의라는 거창한 이념적 프로젝트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보는 관점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겠다. 먼저 앞에서 설명했듯이 필자는 논문 어디에서도 그런 관점을 채택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면 정부와 대통령의 한심하고 치졸한 행동을 어떻게 신자유주의와 연결시킬 수 있는가? 필자가 논문에서 이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여기서 간략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내가 사용하는 신자유주의 개념은 경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를 포함한 총체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신자유주의는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축적(금융화, 유연화, 사영화 등)에 걸맞는 정치체제와 권력관계를 동반한다. 이는 최근에 종종 포스트 민주주의권위적 국가주의등으로 개념화되고는 한다. 이는 금융자본, 초국적 자본을 포함한 기업의 권력 강화로 국가가 포획되는 동시에, 노동계급의 약화 및 각자도생의 개인주의/가족주의의 확산, 그리고 그에 따른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권력관계의 와해와 부재를 특징으로 한다. 물론 특정한 지도자와 정부는 상대적으로 더 무책임하고 한심하고 치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감히 그럴 수 있는 것은 결국에는 국가와 정치체제가 신자유주의(기업권력 강화와 개인주의/가족주의 확대)가 만들어낸 비민주적인 사회권력 관계의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함은 이념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낳은 직접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성공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조장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근거가 엉성한 것은 필자의 논변이 아니라 백승연 씨의 논변이다.




덧글

  • 백승연 2015/02/11 00:17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무사” 지주형 교수님, “시정잡배” 백승연입니다. 큰 따옴표 안에 들어가는 말은 모두 교수님께서 포스팅에서 말씀하신 어구들입니다. 포스팅 하신 글의 목적은 저에게 “응답”하기 위함이 아니라 “학문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관심이 있는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지인”들에게 오해를 풀고자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수준”도 떨어지고 “지인”도 아닌 처지지만, 학문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독자로서 간단한 의견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재훈 기자가 트위터에 링크 걸어둔 글을 보고 오늘 이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드리자면 저는 모처의 대학의 학부에 재학 중인 대학생입니다.
    먼저 이재훈 기자의 기사를 읽은 후, 교수님의 논문을 몇 편 읽어본 다음에 많은 생각이 들어 이런저런 글들을 끄적여놨다가 신자유주의가 어쩌고 하는 이론적인 이야기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아봤자 저 같은 일반인의 설익은 사유를 공개된 지면에서 공유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고, 지면 상의 제약도 고려하여 제가 하고 싶은 말 앞뒤 맥락 끊고 “일반인”으로서 제기할 수 있는 의문점들을 추려 한겨레 왜냐면에 보내보았습니다. 2주 정도 지나서 갑자기 실어주더군요. 이렇게 재반론해주시니 제 생각이 좀더 명확해 진 바도 있고, 지면상 제 의견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부분도 있는 듯하여 몇 마디 남겨보고자 합니다.
    우선 저의 기본적인 입장부터 말씀드리자면 신자유주의가 원인이니 아니니 하는 논쟁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정의되지도 않은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을 가지고 이곳저곳에 아무렇게나 적용해대는 논쟁은 조선시대의 사단칠정논쟁만큼이나 어처구니 없고 무의미한 논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이론가들을 인용할 필요없이, 교수님이 정의하는 신자유주의 개념에 명확한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서는 교수님의 책에 대해 우호적인 서평을 쓰신 김균 교수님(김균 교수님의 학술적 성취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시정잡배”라고 하진 않으시겠지요.)께서 이미 지적한 바가 있지요. 교수님의 논문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을 읽고 나니 3년이 지난 지금도 그 지적은 유효해 보이더군요.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신자유주의 개념을 서투르게 휘두르는 한 환원론이라는 비판을 피할 여지는 없습니다.
    교수님께서는 몇 가지 단순한 반례만으로 세월호 참사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사회학적 설명의 성격에 대한 저의 무지를 지적하시면서, 사회학적 설명이란 “개인의 행동이나 윤리를 설명하는 대신 개인들과 구별되는 집합적 현상을 설명, 다시 말해” “집단의 행동이나 윤리의 패턴이나 추세를 설명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렇지요. 제가 몇 가지 반례를 제시한다고 해서 경향성에 관한 교수님의 일반론이 무너질 리는 당연히 없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교수님께서 하나 착각하고 계신 점은, “신자유주의의 각자도생을 체화한,”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집단은 책임감이 낮은 경향을 보일 것” 등등의 명제의 타당성을 입증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교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교수님의 저러한 주장은 경험적 반증이 불가능한 주장입니다. 통계적으로 입증되어 있는 주장도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고용조건이라는 변인을 통제함에 따라 노동자들이 쉽게 살릴 수 있었던 고객들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하게 되는 현상에 대한 교수님의 주장은 별다른 논문이나 자료도 없고 오직 교수님의 직관적 판단 혹은 일방적인 추측에 의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비정규직들이 농땡이 피우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에는 대체로 동의하겠으나, 그렇다면 멀쩡히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외면하게 되는지는 곰곰이 고민해보면 별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현재 “진보진영의 논리는 그렇게 허술”합니다. 논박되지 않는다고 해서 진실이라니 농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무식해서 과학철학은 잘 모르지만, 반증불가능한 명제를 세워두고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의 논리는 과학이 아니라고 칼 포퍼가 그랬다지요.
    이렇게 말해도 잘 못 알아들으실 것 같으니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최근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 땅콩 회항으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요. 그런데 이 와중에 대한항공 고위 임원과 국토부 공무원 간의 유착관계가 드러나 또 한 번의 파장을 일으켰지요. 어떤 사람은 이런 식으로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유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정규직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집합적 수준에서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책임감이 없었다면 그런 부정부패는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노동시장이 유연해서 적당히 돈 받다가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러한 유착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요구된다.’ 이 주장은 매우 잘못된 주장입니다. 반대로 비정규직이라면 “각자도생의 이데올로기를 체화해서” 한탕 해먹고 나가려고 유착할 수도 있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양한 인과관계를 적절히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을 해줘도 그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연한 노동시장이 경직적 노동시장에 비해 더 효율적이고 정의로운 경향이 있다는 점이 반박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가요? 교수님께서는 본인 논문의 목적이 “신자유주의 이후 한국 사회 퇴보에 대한 인식”에서 세월호 참사가 정치화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히는 데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빈약한 주장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교수님께선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언급하셨지요. 안 그래도 카트리나 이야기도 한겨레 왜냐면에 쓰려다가 말았는데 말씀 잘하셨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당시 신자유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는데 미국적 맥락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다루어진 측면은 주로 부시의 어설픈 대처 방식과 작은정부론, 감세정책기조였지요. 여기서는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비교적 분명하고 따라서 사태에 대한 대안도 확실합니다. 신자유주의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단어가 정책적인 차원 그리고, 정치인의 행태론적인 차원으로 좁혀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더 포괄적인 신자유주의를 이야기한 사람도 많지만 카트리나=신자유주의로 기억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제가 말씀드린 이유들 때문이지요. 카트리나 모멘트는 공화당에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했고 오바마 정부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이 당선됨으로써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극복된 것입니까? 모르긴 몰라도 고매하신 교수님께서 대결하고자하는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닐 텐데요. 결국 교수님의 논리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노론의 당리당략과 연관되어 있다는 이덕일 씨의 주장만큼이나 허술한 것입니다. 교수님의 논리대로면, 이덕일 씨의 주장도 논박이 불가능합니다. 뜬금 없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치열한 탐구는 사라지고 반증불가능한 주의와 주장만 남아서 시답잖은 말싸움하는 일은 아무런 학술적 의의가 없겠지요.
    제가 교수님의 논문을 읽으면서 느꼈던 당혹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경제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를 포함한 총체를 가리키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점에 저는 십분 동의합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라는 총체적인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정작 총체적인 현실에 대한 설명은 지워졌습니다. 한국 사회의 퇴행에는 신자유주의가 있었다는 교수님의 불분명한 설명을 제하고 나면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 도움이 되는 분석은 부재합니다. 총체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겠다는 선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나 총체적으로 사회를 관찰하고 있는가, 이게 더 중요하지요. 저는, 그리고 제 지인들은 교수님의 논문을 읽었을 때 이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교수님이었다면 정치,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추악한 현실이 폭로되었다고 성급하게 주장하기 보다는 자본주의의 다양성(Varieties of Capitalism) 논의를 염두해두고 세월호 참사나 허리케인 카트리나 참사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사건사고를 비교하면서 제도적이고 관습적인 층위의 차이와 전개절차를 관찰해보고 논문을 썼을 것입니다. 조금 공을 기울인다면 사회의 총체적 이해를 돕는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당장 취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유용한 제안도 해볼 수 있었겠지요. 신자유주의, 거시적, 구조적, 총체적 따위의 단어를 사용하고 말고가 그 논문이 실제로 총체적인 이해를 돕는 논문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교수님의 논문을 읽음으로써 드러납니다.
    제가 교수님의 논문에서 보았던 것은 서투르게 읽은 듯한 두꺼운 몇 권의 책과 신문기사 몇 편이 두서없이 나열된 채 따로 놀고 있는 새내기 운동권 학생들의 세미나 발제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교수님께서 공들여 쓰신 논문보다 노정태씨의 칼럼(http://www.huffingtonpost.kr/jeongtae-roh/story_b_5706973.html)이나 김남근 변호사의 칼럼, 박권일씨의 글(http://issuu.com/01365/docs/________________________10___/15)이 훨씬 사태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깔끔한 이해를 돕더군요. 물론 학계에서 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논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보았을 때 교수님의 논문은 사회학적 통찰력에도 별로 기여하는 바가 없었습니다. <<교수신문>>에 예전에 좋은 말씀 하셨더군요: “새롭고 독창적인 주장을 담은 논문일수록 심사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은 반면 별로 새롭지 않고 큰 학술적 가치도 없지만 그만큼 특별히 흠잡을 만한 것도 없는 논문일수록 학술지 게재가 쉽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논문이 어느 쪽이었는지는 본인께서 직접 “자신의 생각을 여러 번 반추”해보시길 바랍니다.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에 나타난 비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에는 공감이 가지만 참사가 있은 지 몇 개월이 지나서 사회학자가 쓴 논문이라고 보기에는 안타까웠습니다. ‘Devil’s in the detail’이라고들 하지요. 거대이론의 적실성과 합리성은 미시적인 현상을 명확히 파악해 낼 때 도달가능하다고 봅니다. 교수님의 논문에서 디테일과 이론은 버성기게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습니다.
    몇 가지 더 간단히 짚고 넘어가보겠습니다. 가령 A, ~A, B, ~B를 들어가며 논문의 기본 논지조차 이해 못했다고 말씀하셨는데, 교수님께선 저의 그 짧은 글에 대해서도 제 논지에 대한 “오독”을 하고 계시더군요. 또 초반에는 “필자는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이념적 프로젝트로만 국한해 쓰지 않으며,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프로젝트가 정부와 대통령의 무책임함을 <<조장>>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다”(강조는 인용자)라고 말씀하시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그러나 그들이 감히 그럴 수 있는 것은 결국에는 국가와 정치체제가 신자유주의(기업권력 강화와 개인주의/가족주의 확대)가 만들어낸 비민주적인 사회권력 관계의 토대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즉 정부의 무능력과 무책임함은 ‘이념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가 낳은 직접적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성공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조장>>되는 것이다.”(강조는 인용자)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우매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참 얕은 술수입니다.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추더라도 오독했다고 할 수 있으니 참 좋으시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기획(project)이라는 말을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의 성공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 권력관계에 의해 조장”된다는 주장을 포함하는 의미로 썼지요. 이외에도 명백하게 눈에 띄는 몇 가지 실수들이 있는데 굳이 이에 대해서는 치졸하게 시시콜콜 장황하게 콕콕 집어가며 따져 묻지 않겠습니다. 논쟁을 실없이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비의 원칙(principles of charity)을 지켜야 한다고 1학년 교양 수업시간에 배웠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블로그에 쓰신 글이기도 하고요.
    쓰다 보니 좋지도 않은 글이 길어졌습니다만 아무쪼록 다음 번에 제가 교수님의 새로운 논문을 읽게 된다면, 그 때는 참 유익하고 많이 배워가는 논문이라고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이 단순히 불쾌한 일이라기보다는 교수님의 더 정교하고 생산적인 연구를 위한 밑받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위에 감기 조심하시고 겨울 잘 나시길 바랍니다.
  • pepe 2015/02/11 20:08 # 답글

    기대하지 않았던 장문의 답장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번 일이 "더 정교하고 생산적인 연구를 위한 밑받침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장문의 반론이 있었다는 것은 논문의 주장의 옳고 그름과는 별개로 그 만큼 하나의 글로서 논문을 잘 쓰지는 못했다는 뜻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스스로도 반성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기회를 준 데에 감사를 표합니다. 다음은 지적한 부분에 대한 몇 가지 해명 및 변명입니다.

    가장 간략히 답변할 수 있는 것부터 말하면 비정규직이 대체로 무책임한 행동과 연결된다는 것은 세월호 참사와 신자유주의의 관계에 대한 대한 수많은 설명 중 하나에 불과한 '해석'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해명에 대해 분명히 불만을 가지시겠지만 설사 비정규직과 무책임한 행동이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실증된다고 해도 전체적인 논문의 틀거리가 크게 바뀌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신자유주의 개념에서 비정규직은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지 않습니다.다음으로 '프로젝트'의 의미를 그렇게 넓게 쓰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프로젝트와 사회관계는 다른 개념입니다.

    보다 중요한 신자유주의의 개념에 대해 말하면, 신자유주의 개념에 대해 명확한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김균 교수님의 지적에 대해서, 그 '명확함'이 어느 정도를 의미하느냐는 불분명하나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카트리나 사태와 신자유주의를 연결 짓는 논의에서도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규정되지는 않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계속적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그런 개념입니다. 그런데 철학이든 사회과학이든 그렇지 않은 개념이 어디 하나라도 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개념을 사용하는 각자가 나름대로 명확히 규정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저의 신자유주의 이해(사실 그 어떤 이해도)가 남김 없이 명확할 수는 없지만 저 자신도 계속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를 늘려 나가고 있습니다. 제 논문이 어떤 통찰을 주는지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고 독자에 따라 별다른 통찰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저 자신도 세월호를 이해하는 하나의 접근 방식으로 신자유주의를 택한 것이며 그러한 논의가 백승연 씨께서 우려하듯이 너무나 많기에 그다지 신통찮은 평가를 받는 것은 충분히 감수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점을 미리 인식했기에 종래의 방식과 다르게 신자유주의를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링크한 논문(특히 마지막 부분)을 읽어 보시고 제가 논하는 신자유주의의 개념의 명확성과 체계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얼마나 통찰을 줄 수 있는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dl.dropboxusercontent.com/u/17704840/%EC%A7%80%EC%A3%BC%ED%98%95%20-%20%EC%8B%A0%EC%9E%90%EC%9C%A0%EC%A3%BC%EC%9D%98%EC%9D%98%20%EB%B3%B5%ED%95%A9%EC%A7%88%EC%84%9C%20%EA%B8%88%EC%9C%B5%ED%99%94%20%EA%B3%84%EA%B8%89%EA%B6%8C%EB%A0%A5%20%EC%82%AC%EC%82%AC%ED%99%94%20%5B%EC%82%AC%ED%9A%8C%EA%B3%BC%ED%95%99%EC%97%B0%EA%B5%AC19-1%202011%5D.pdf

    이 논문에서 저는 신자유주의를 사사화(통치), 계급권력(정치), 금융화(경제)의 결합으로 이해했고, '세월호' 논문에서는 이를 무능력(통치), 무책임 (정치), 교환가치 우세(경제)의 결합으로 변용해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두의 저변에 있는 것은 사적 재산권의 우위입니다. 이 논문을 소개하는 까닭은 저의 신자유주의 개념이 체계적이고 명확하며 통찰을 준다는 항변을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마도 이 논문도 흠을 잡으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알기로 신자유주의 논자 중에서는 이 정도 수준의 체계성이나 명확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개념과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 사이의 관련성이 보기에 따라서는 분명히 제시되지는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가 이러한 의미의 신자유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가 신자유주의로 환원되는 것은 아닙니다. 환원론으로 읽히는 것은 순전히 읽는 사람이 그렇게 읽었기 때문입니다. 논문에서 다른 요인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설명이 불충분하거나 다른 원인이 더 중요하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현대 사회과학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환원론이기 때문에 그러한 비판은 대개는 부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비난의 대상이 되는 '환원론'이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허수아비인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비록 글에서 "시정잡배"에 비유하기는 했지만 "무사"의 자질이 충분하시니 순수 사회과학에 관심 기울이는 이 흔치 않은 이 시대에 열심히 정진하시어 부디 훌륭한 "무사"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역시 추위에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히 겨울 잘 나기를 바랍니다.
댓글 입력 영역



메모장

My Very Old Homepage

Contact:

Email: pepemoraz at gmail.com
MSN: moraz2002 at 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