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의 지대 추구와 베블렌 실험실

Q.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경영권, 학벌, 영어 ... 이 모두의 공통점은? (힌트.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는 '이윤'이라 보기 어려운 OO의 원천)


A. 지대(rent)




부동산이야 원래 그로부터 나오는 소득을 지대라고 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혹자는 경영권이 왜 지대의 원천인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경영권은 기본적으로 자본의 소유로부터 나오거나 부여되고 따라서 그로부터 나오는 소득은 이윤이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이건희의 삼성전자 지분이 3.3퍼센트라고 한다. 국민연금은 5퍼센트이다. 그리고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을 다 합하면 50퍼센트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건희가 삼성전자의 '오너'행세를 한다. 어떻게 할까? 순환출자를 통해서다. 자신이 보다 많은 지분을 가지고 지배하는 다른 계열사들이 삼성전자에 투자하게 함으로써 사실상 자신이 지배하는 지분을 만든다. 외국인들은 경영에 관심이 없고, 경영권의 교체를 통해 회사가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건희의 경영권을 인정한다. 이렇게 이렇게 적은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것은 삼성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재벌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재벌은 자본소유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고 이윤을 얻는게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기업내에서 장악하고 있는 위치를 통해 (순환출자를 함으로써) 소유지분 이상의 소득, 즉 지대를 챙기는 것이다. 이러한 위치가 없다면 이건희는 3.3퍼센트 소유지분에 대한 대가만 챙겨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학벌, 영어 또한 마찬가지다. 학벌이나 영어가 어떤 기여를 하는 경우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로부터 생기는 소득은 상당부분 희소한 상징재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독점함으로써 추가적으로 생기는 소득이다. 특히 명문대 졸업장을 가진 이들과 영어를 잘하는 이들은 별것 아닌 졸업장과 별것 아닌 영어를 대단한 것으로 포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소득을 증대시킨다. 하지만 모두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모두가 영어를 잘한다면, 이러한 것들로부터 추가적으로 생기는 소득은 0이될 것이다. 모두가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어를 잘할 수는 없지 않냐고? 글쎄, 서울대 나오고 (미국에서는 대학을 안나오고)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미국에 가서도 과연 한국에서 누리는 만큼의 추가소득을 과연 얻을 수 있을까? 하긴 요즘은 한국에서조차도 서울대 나온 것도, 고시를 패스한 것도 그다지 많은 지대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학이 늘어났다는 얘기를 최장집 교수가 한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긴 하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사회를 마르크스주의에서처럼 노-자관계를 위주로 파악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학연, 지연, 혈연 등의 권력관계에 기초한 지대추구와 그에 따라 소득에 추가적인 그리고 막대한! 불평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보다 큰 이슈가 되는 것은 착취보다는 바로 이 지대추구다(정규직-비정규직 문제도 착취가 아니라 지대의 문제이다). 사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지대추구고,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도 지대추구를 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대로부터 생기는 소득이 워낙 막대하기 때문에) 은연중에 자신도 지대추구를 하려는 성향 (예를 들면 학연, 혈연, 지연 네트워크를 만들고 작동시키는 것)이 있는 것은 바로 그만큼 지대추구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서 보다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지대추구이며 이 문제의 해결이 보다 시급한 것일 수 있다. 그래서 말로는 노무현부터 이명박까지 공정하고 깨끗한 사회를 부르짖는다. 그런데 좌든 우든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왜 그럴까? 불공정한 지대만 없애고 자본과 노동에 대해 각각 기여한 대로 공정히 분배되는 이윤과 노동만 존재하는 사회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리카도로 대표되는) 고전파 정치경제학(그리고 지대추구에 대해서는 신고전파경제학도 고전파 정치경제학과 동일한 시각을 공유한다)에서처럼 깨끗한 이윤과 타락한 지대는 깔끔히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대추구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주의에 있어 본질적이다. 


베블렌에 따르면 원래 자본과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인 이윤이란 본래 지대와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경우 마르크스가 이윤이라고 본 것, 즉 배타적 자본소유에 근거한 노동착취에 따른 소득도 지대의 하위범주에 속하게 된다. 즉 배타적 자본소유나 배타적 부동산, 경영권, 학벌, 영어 소유나 다 같은 종류의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베블렌은 자본을 단지 물질적 설비와 재화에 국한하지 않으며 배타적 소유를 통해 소득을 낳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한다. 그리고 아마도 혼란을 없애기 위해 물질적 장비/재화와 종종 동일시되는 자본보다는 '자산'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소유하여 타인의 사용을 막고 그로부터 소득을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본이요, 자산이다. 여기에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비물질적인 것도 포함된다(예: 유형자산과 무형자산의 개념). 그 어느 것도 자산이 될 수 있다. 만약 어떤 것이 그것을 배타적으로 점유함으로써 소득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된다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권력자원을 동원하여 그것을 자본화하려고 한다. 즉 배타적 소유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전에는 사유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들(예: 지식, 소프트웨어, 물 … ) 이 사유의 대상이 되고 상품화가 되고 그리고 화폐로 가격이 표시되게 된다. 


그렇다면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지대추구의 근절이란 기껏해야 상품화되지 않은 지대추구에 대한 근절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이것조차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여기에 대해 지배적 자본 또는 지배계급은 지대추구의 거점을 자산화함으로써 대응할 수 있다. 교육비용이 올라감으로써 학벌은 점점 더 상품화되고 성적이 매겨짐으로써 영어실력 또한 상품화된다. 주식소유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았던 경영권 또한 점점 더 주식소유에 의해 뒷받침되게 될 것이다(예를 들면 지주회사). 종래에는 상품화되고 자산화되지 않았던 지대추구의 거점을 상품화하고 자산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상품화와 자산화는 기존에는 소유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들을 소유의 대상으로 만드는 온갖 타락하고 불공정하고 폭력적인 협잡이 끼어들지 않고는 발생하지 않는다(이 과정을 맑스는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어떤 형태로든 타락한 지대추구를 수반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과연 이러한 방식으로 일어나는 지대추구 거점의 상품화, 자본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탈자본주의) 사회는 어떠한 사회일 것이냐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필자의 역량을 벗어나는 너무나 큰 문제이므로 여기서 글을 끝맺을 수 밖에 없지만, '경제민주주의', 즉 경제적 자원의 사용과 배분에 대한 의사결정의 민주화가 경제적 자원의 배타적 사용을 막음으로써 이러한 문제의 해결 또는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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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r Geist » Rent Seeking 2011-05-01 00:08:45 #

    ... 정을 맑스는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렀다.” 2. “경제적 자원의 사용과 배분에 관한 의사결정의 민주화”를 하려면 체제의 내재적 산물인 사회구성원의 신념이 바뀔 필요가 있을텐데, 과연 그들이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지향할지? 3. &# ... more

덧글

  • merong 2011/04/29 14:23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페페님.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흠흠.
  • pepe 2011/04/29 14:58 # 답글

    과찬의 말씀을 ^^ 감사합니다.
  • pheeree 2011/04/29 15:47 # 삭제 답글

    페페님, 완전 동감이에요.
  • pepe 2011/04/29 18:53 # 답글

    앗. 피리님, 오랜만입니다! ^^

    특히 피리님의 부동산 관련 트윗은 언제나 반짝반짝 했었는데
    어느날 손 쓸 새(?)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셔서 아쉬웠습니다.
    잘 계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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