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선생님에 대한 추억 실험실외부

암투병 소아마비 수필가 장영희 교수 별세

http://www.donga.com/fbin/output?rss=1&n=200905090227


오늘 학과 동기로부터 문자로 장영희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위를 받은 이후로 여러가지 일(강의, 연구소 일 등)로 계속 심적 여유가 없었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언제 내가 번역했던 책(<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인문학 스터디> 등)을 들고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병원에서 투병중이셨던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2년 전쯤에 학교에서 멀리 목발 짚고 걸어가시는 선생님 모습을, 인사도 차마 못하고 멀리서 본게 그 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고 말았다. 다소 숫기 없는 나로서는 대학 4년 (그러니까 사회학과에서 복수전공을 하기전 영문과 학생이었던 기간) 동안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을 뿐만 아니라, (영어로든 국어로든) 내 글쓰기의 틀을 잡아주신,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베스트 티쳐셨는데, 학위 받고 귀국하고 시간도 꽤 지났건만 게으름탓에 한번 찾아 뵙지도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나쁜 학생이 되고 말았다.


기억을 돌이켜 보건대, 나는 장영희 교수님에게 다음의 세 과목을 들었다. 고급영작문 (1992년 1학기), 논문작성법 (1992년 2학기), 20세기 미국소설 (1993년 2학기). 


영문과 2학년의 고급영작문과 논문작성법은 매우 어려운 난코스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장영희 선생님 반이 제일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과목 다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도 있었지만) 수업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었다. 고급영작문의 경우에는 한 학기 동안 문학을 주제로 3-5쪽 분량의 페이퍼를 13-4번 낸 것으로 기억한다. 술 먹고 놀다 들어와서는 다음날 제출하기 위해 새벽에 술 취해서 쓴 기억을 포함해 아무튼 이 때 밤새기를 정말 밥먹듯이 했다. 뿐만 아니라 학기 말에는 저널(일기)도 써서 제출해야 했다. 물론 선생님은 모든 제출물을 읽고 논평을 해주셨다. 특히 페이퍼의 경우는 초고를 내면 수정해서 돌려주고, 두번째도 역시 일일히 수정하여 돌려주셨다. 빨간펜으로는 틀린 문법을 교정해주시고, 파란펜으로는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주시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면담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기도 했다. 


당시 나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철학적 개념(실존주의, 절망... 등등)을 마구 남발하며 헤밍웨이의 단편 등에 문학비평을 쓰고는 했다. 설명을 달지 않은 까닭은 물론 잘 몰랐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서도 철학으로 폼은 잡고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이런 나에게 '왜' 그런지 설명하라는 지적을 하셨다. 그리고 불분명한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쓰라고도 지적을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왜' 그런지 설명을 하려고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왜'에 너무 강박이 되는 바람에 'because'라는 말을 남발하여 학기 말쯤에는 내 글이 "하늘은 파랗다. 왜냐하면..."이라는 식으로 필요 없는데도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지만, 영국에서 어느 교수로부터 영국사람들보다 더 영국적으로 쓴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 생긴 습관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선생님은 매 학기 가르친 학생들의 사진을 기념으로 찍어 두시고는 하였는데, 당시 우리 반 학생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선생님이 사진 찍을 때 포즈만 잡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사진을 다 찍고 나자, 다른 반 학생들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고 실망을 표시했던 기억이 난다. 그제서야 몇 학생이 같이 찍자고 그랬지만 이미 삐져버리신 선생님은 같이 사진 찍기를 거부하셨었다. 나를 포함해서 참으로 철없는 학생들이었고, 그게 나한테는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아, 이 때부터 이미 나는 나쁜 학생이었던 것이다. 


다음 학기에도 나는 힘들어도 배울 것이 많다고 판단하여 선생님이 가르치시던 <논문작성법>을 신청하였다. <논문작성법>에서 나는 참고문헌 찾기, 참고문헌과 각주 작성, 메모카드 작성... 등 논문작성의 전과정을 배웠다. 나는 지금 사회학 과목을 듣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 내용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당시 키스터 신부님이 가르치시던 <영문학 형태론>이라는 과목도 듣고 있었는데, 과제로 영시를 써서 내야 했다. 내가 쓴 영시가 형편 없는 점수를 받자, 나는 등단한 시인이신 아버지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내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이 또한 기대했던 만큼의 점수를 받지 못했다. 아무리 번역이란 공을 들였어도 어떻든 내 글을 내지 않았으므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해 마땅하나, 나는 당시에 좋지 못한 점수를 받은 까닭이 박사도 아직 못 받고 문학이 뭔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시간강사가 채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도 좋은 까닭은 단지 그 시가 원래 프로가 쓴 것이라서가 아니라 장영희 선생님께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장영희 선생님께 제출한 다른 과제에 이 시가 나도 모르게 잘못 끼어들어갔는데, 선생님은 과제도 아니었지만 그 시의 멋진 글귀에 nice!라는 평을 달아주셨던 것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그 당시 내 친한 친구가 방황하면서 이 과목에 계속 들어오지 않았을 때, 선생님께 나한테 하신 말씀이다. 왜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나오라고 하지 않냐고. 서강대는 학점의 2배 (2학점인 경우 4시간)를 초과해서 결석하면 F를 준다. 내 친구는 F를 이미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 때 선생님은 아마 F를 바로 주지 않고 기다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친구와 친한 내게 연락해서 다시 들어오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 때 수업시간에 나를 훈계하시면서 하신 말씀, "What are friends for?" 친구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 친구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말씀으로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쁜 학생일 뿐 아니라 나쁜 친구이기도 했던 셈이었다. 물론 나는 그 친구에게 계속 학교에 나오라고 연락하고, 그럼에도 그 친구는 학교에 안나왔었던 것이긴 했지만, 그 친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집에 한번 찾아가 보지도 않고 결국에는 손을 놓았었기 때문이다.


이 수업에 대해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은 물론 이 과목에서도 선생님은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셨다는 것이다. 이 때는 물론 우리 학생들은 선생님과 사진 같이 찍자고 하였다. 그러나 1학기 때 이미 지적을 받아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 같아서 여전히 속이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20세기 미국소설>은 내가 장영희 선생님께 한국어로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수업이다.  당시 다뤘던 텍스트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아>였다. 중간고사를 보는데 마지막에 기찬 문제가 나왔다. 이 책이 왼쪽면에서 끝나는지 오른쪽 면에서 끝나는지 맞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영문으로 다 읽지 않고 번역본에 의지하는 학생들(그래서 영어영문학과가 아니라 '국어영문학과'라는 농담도 있었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로 국어로 영문학을 읽었던 나는 시험직전에 원서의 마지막 부분을 운좋게 펼춰봤던 덕에 그 문제를 맞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수업시간에 제임스 딘 주연의 <에덴의 동쪽>과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를 비디오로 시청했던 기억도 나는데, 당시에는 너무나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고서야 영국에서 다시 한번 TV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 때서야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하지만 나의 텀페이퍼는 <위대한 개츠비>에 관한 것이었다. 개츠비가 미국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의 폐해를 지적하는 소설이라고 해석하는, 다소 야심찬 내용의 논문이었는데, 선생님은 나의 이런 도발적인 해석에 근거가 약하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나는 장영희 선생님께 A를 받아 본 적이 없다. 항상 B+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어떤 정도의 점수인지 나는 모르겠다. 당시 서강대 기준으로는 나쁜 점수는 아니었겠지만). 나중에 나는 이 페이퍼를 고쳐서 졸업 논문으로 제출하였다. 당연히 장영희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하고 싶었지만, 당시 그 분은 영문과 교수가 아니라 교양과정부 교수였다. 그리하여 다른 교수에게 논문을 낼 수 밖에 없었다(그 분은 넉넉하게 A학점을 주셨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나서도 학교를 계속 다녔기 때문에 나와 장영희 선생님이 만날 기회가 한번 더 있었다. 1996년 말에 사회학과 대학원을 중퇴하고 영국의 석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는데, 그 때 선생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렸던 것이다. 추천서를 써달라면 귀찮아서 학생들더러 써오라는 교수들도 많은데, 당시 나는 운좋게도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었다. 장영희 선생님께서도 직접 그 유려한 영 문장으로 매우 후한 내용의 추천서를 써주셨다. 나는 이 추천서에서도 몇 가지 영어 표현들을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내가 장영희 선생님과 교류한 것은 1999년 초가 마지막이다. 사회학 석사과정을 끝마치고 1998년 12월 나는 잠시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억에는 안나지만 당시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때도 나는 선생님께 인사를 제대로 못드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영국에 돌아가고 나서 이메일을 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나중에 선생님 수업을 듣고 있던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소개하셨다는 답장을 보내셨다(안타깝게도 그 메일은 내게 남아 있지 않다). 열심히 영작문 공부해서 나처럼 되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내 영어실력은 선생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게으르고 악한 학생은 그 이후로 선생님을 찾아 뵙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먼 발치에서 한번 보았던 것 빼고는. 이제는 후회하고 상심해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1999년 1월 30일에 장영희 선생님께 보낸 편지


장영희 교수님께,


안녕하셨어요. 주형입니다.

저번에 잠시 한국 방문했을 때에 경황이 없어서 

찾아가 인사도 못 드리고 우연히 D관 앞에서 

만나 참으로 민망하고 죄송하였었습니다. 

하지만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서 반가왔습니다.


저는 현재는 London School of Economics and

Political Science라고 University of London

의 일부인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회과학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에 등록해 다니고 있습니다. 

김세윤이 수학을 공부하고 있는 King's College 

London에서 겨우 3-4분 거리에 있지요. 

저는 여기 오기 전에는 Lancaster University에서 

석사를 잘 끝마쳤습니다. Wordsworth가 

살았다는 잉글랜드 북서부의 국립 공원 지역인 

Lake District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요. 

아시다시피 장미전쟁에서 싸운 두 가문 중의

하나의 영지가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학교의 지도교수와 잘

맞지 않아서 다시 Lancaster대학교로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 학교에서 제 석사

논문을 지도했던 분이 저를 잘 보아주셔서

RA기회를 주고, 다른 장학금 기회도 많이 

알아 봐 준다고 합니다. 잘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국내에 잘 안알려져서 그렇지 사회학과의 

수준도 제가 지금 있는 이름뿐인 LSE의 

사회학과와 비교도 않게 높거든요.


사실은 Lancaster대학교에서 Distinction을 

받고 석사 졸업했는데, 영국인도 받기 힘든데 

외국인이 받는 경우는 더더구나 드물지요.

여기에는 선생님한테 한 때 혹독하게 

영작문 수업을 받은게 작용했다고 생각

합니다. 어떤 교수는 제 텀페이퍼를 보

더니 영국학생들보다 더 영국적으로 쓴

다고 하기도 했지요. 제 석사 논문 지도

교수님께서는 자기가 이제까지 지도한 

외국 학생(물론 그 중에선 유럽학생들

도 많았죠) 중에서 가장 영어(물론 

written English지만)가 뛰어나다고 혹시 

영어문법을 봐주는 특별한 프로그램이라도 

있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물론 회화와 

듣기는 여전히 잘못하지만--그리고 물론 

작문도 기술이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선생님께 배운 작문 덕분에 그래도 

여기 교수님들에게 인정을 받았으니 

선생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셈입니다.


작년 가을에는 잠시 아일랜드 더블린에 여행

갔었는데 영문학을 학부 때 공부해서 그런지 

재미있더군요. 사실 아일랜드에 그렇게 훌륭한 

작가들이 많은지 몰랐습니다. 스위프트부터

버나드 쇼, 오스카 와일드, 예이츠, 베켓,

조이스 등등. 대단하더라고요. 식민지에서

어떻게 보면 본토에서 보다 더 뛰어난 문인들이 

많이 나왔다는 것을 보면 약간 아이러니하지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1999.1.30.

제자 지주형 올림.



1998년 11월 장영희 선생님께서 써주신 추천서


To Whom It May Concern:


I am pleased to have the opportunity to recommend Mr. Joo Hyoung Ji for your distinguished program.  I had Mr. Ji in three of my courses--“Advanced English Composition [about Literature],” “Report [Research Paper] Writing,” and “20th Century American Novel”--in which I got to know him rather well both socially and academically.  So I feel that I am qualified to write about him both as a scholar and as a person.


As a scholar Mr. Ji rates very highly.  In all the courses he took from me, he impressed me with his competency of the English language and literary sensibility.  What I particularly liked about his academic orientation was that he brought fresh insights to the subject he dealt with, not simply content with repeating what he had read in the sources.  He is very well read and has a broad reservoir of knowledge, which helps him see and interpret things with sharp insights and alert creativity.  His oral presentations were always engaging performances that caught and kept the attention of the class.  He expresses himself clearly and logically and develops his arguments in a lucid and polished English.


After he earned his B. A. in English literature, he entered the M. A. program in sociology at Sogang University.  In  fact, when he told me about his plan to pursue a career in sociology, I was somewhat disappointed because I was hoping he would continue to study literature.  However, on second thought, his infinite curiosity about a new world, his philosophical bent, his readiness to explore a variety of cultures, and most of all, his analytical power will make him a very competent student of sociology.


As a person who studies literature, frankly speaking, I am not very well informed of the yardsticks for measuring a student’s chance of success in sociology.  However, I know one thing: Korea is in need of good sociologists, well-trained both in theory and practice.  Korea is a country where the old and new values are in constant conflicts, which often create great confusions both in politics and society.  Right now it goes through various upheavals of a transitional period, but it will soon emerge as a truly democratic nation with the help of competent sociologists.  And Mr. Ji has all the potential to be one.


All in all, I am sure that Mr. Ji will be an important asset in your program and someday a sociologist who will lead the Korean society in a right way.


Young-Hee Chang




Director

Assistant Professor

General English Program

Sogang University


덧글

  • 2009/05/10 07: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장보고 2009/05/10 10:17 # 삭제 답글

    불량학생이라 멀리서 늘 존경하면서도
    부담스러워 한과목도 듣지 못했음을 늘 후회했는데...
    그래서 늘 병마를 이기시리라 믿었고 기도했는데
    오늘 슬픈 소식을 듣게 되었네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 오후네시 2009/05/10 13:01 # 답글

    제 주위를 봐도 다들 장영희 교수님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더군요.
    아무쪼록 선생님께서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안히 쉬셨으면 합니다.
  • .. 2009/05/10 14:34 # 삭제 답글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이젠 편히 쉬실수 있겠지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 박혜연 2009/05/10 19:44 # 삭제 답글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영희교수님~ 천국에서라도 행복하시길 만57세임에도 소녀같은 외모와 소녀같은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분이셨는데... ㅠㅠ
  • 2010/07/04 22: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書生 2011/05/15 16:13 # 답글

    스승의 날이라 이 글이 읽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읽을 때마다 제 스승님들이 생각납니다. 그럼.....
  • sciolto 2011/05/19 11:26 # 삭제 답글

    정말 멋진 분이 쓰신 멋진 추천사군요. 이 글을 앞으로 꺼내어 제게 읽을 기회를 주신 바로 윗분께도 감사드립니다.
  • pepe 2011/05/20 12:25 # 답글

    부끄럽습니다.
  • SFC Weekly 2012/05/10 09:43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서강대학교 공식 온라인소식지 SFC Weekly입니다. 이번에 고 장영희교수님 3주기 추모미사를 취재하면서 장영희 교수님 관련 사진을 찾다가 우연히 들르게 되었습니다. 동문분께서 올리신 이 사진을 SFC Weekly에서 사용해도 될런지요?
  • pepe 2012/05/12 18:00 # 답글

    공식 온라인소식지라는데 인터넷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군요.
  • SFC Weekly 2012/05/14 11:16 # 삭제 답글

    공식적으로는 검색이 되지 않을 겁니다. 학교의 동문, 교직원, 재학생에게 발송되는 내부소식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동문이신데 메일로 소식지가 가지 않는다면 저희가 갖고 있는 귀하의 메일 주소가 잘못되어있거나 스팸처리되어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메일로 오지 않으신다면 학교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사진은 사용해도 될지 다시 한번 여쭤봐도 될까요?
  • pepe 2012/05/15 10:08 # 답글

    그렇군요. 네 사용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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