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5월 29일
지식기반경제의 모순: 지식은 상품인가?
(1) “지식은 점점 더 전세계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과학, 커뮤니케이션 및 컴퓨팅 기술은 여러 나라들이 지식을 활용하고 지구적 경제에 더 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서문)
(2) “지식기반경제는 지식이 기업, 조직, 개인 및 공동체에 의해 효율적으로 창조되고, 획득되고, 전달되는 경제로 정의된다.” (13쪽)
(3) “지식의 창조와 전파는 지적 재산이 존중되고 지적 재산에 대한 권리가 보호받고 강요되는 정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33쪽)
- OECD, Korea and the Knowledge-based Economy: Making the Transition, 2000 중에서.
위에 인용한 문장들은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이른바 선진국들의 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가 2000년 출판한 한국의 지식기반경제 전략에 관한 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OECD가 지식기반경제론과 개별국가를 연결시킨 최초의 보고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요즘 지식기반경제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현재 이 담론은 세계화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지배적인 경제-사회 담론의 하나이다. 이것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 또는 정보경제론의 최신판으로서, 위의 세 인용문은 담론으로서의 지식기반경제knowledge-based economy의 세 가지 특성, 즉 (1) 정보/통신기술과 지식이 핵심적인 요소이고 (2) 지식의 생산과 전달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며 (3) 지식이 재산으로서 보호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식기반경제는, 지난 호에 설명했던 세계화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시공간의 재구조화의 다른 한 측을 이루고 있다. 세계화가 자본축적을 위해 공간적 연결과 차이를 낳는 복잡한 과정이라면, 정보화/지식화는 시간적 연속과 차이를 낳는 복잡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이 간단하게 보이는 주장의 이해에 필요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지식기반경제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겠다.
1. 자본주의적 시간의 성격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시간적 메커니즘이다. 첫째, 자본은 노동력에 지불하는 임금과 노동력이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상품의 가치의 차이로부터 잉여가치를 얻는데, 이것은 노동시간을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만큼 이상으로 절대적으로 늘림으로써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둘째, (노동통제의 강화를 포함한) 생산방식의 효율화와 혁신은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상대적 노동시간을 줄이고 단위 시간당 생산되는 상품의 수를 늘린다. 이를 통해 증가되는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그런데, 상품의 가치가 추상 또는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 볼 때, 단위시간당 상품생산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그 상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개 만드는데 1시간 걸리는 100원짜리 상품이 어떤 기업에서는 기술혁신으로 1개 만드는 30분 밖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고 하자. 그 기업은 1시간에 2개를 만들어 동일한 100원씩 받고 팔아 다른 기업보다 시간당 더 많은 수익을 올리거나 개당 판매 가격을 90원이나 80원으로 내림으로써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신기술을 추격하고 도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상품 생산에 드는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 이전에 비해 절반이 됨을 의미하며, 결국 상품 가치가 절반, 즉 50원으로 하락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최초 기술혁신을 했던 기업의 경쟁우위가 사라진다. 따라서 포스톤Moishe Postone이 지적하듯이, 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기업에게 다시금 기술혁신의 압력이 가해지게 된다. 기술혁신의 효과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기업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술혁신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을 위해 새로운 것을 계속 요구하며, 이런 의미에서 시간적 단절, 즉 옛 것과 새 것의 차이를 계속 창출함으로써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신기술에 의한 과거와의 단절과 차이의 생성에 의해 성장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적 순환, 즉 상승과 하강에서도 보여진다.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드라티에프Nikolai Kondratieff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50-60년 주기로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장기 파동long wave’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슘페터Joseph Schumpeter와 프리만Chris Freeman과 같은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순환의 주요 원인을 기술혁신으로 파악한다. 기술혁신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공정의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의 혁신이다. 전자는 같은 제품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술적 혁신이며, 후자는 더 큰 가치를 갖는 새로운 제품의 개발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기존 산업 내에서의 제품 혁신과 기존 산업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류의 제품개발로 나뉠 수 있다. 여기서 후자, 즉 새로운 산업의 형성을 낳는 기술혁신이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의 부침을 설명하는 주요한 요인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시장이 포화되고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기술혁신에 의해 신산업이 개척되고 새로운 상품이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수요, 시장, 부가가치가 창출됨으로써 경제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회문화 및 조직상의 변동이 먼저 또는 적어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문화와 조직형태가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술 자체가 사회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포드Ford라는 자동차 회사로 대표되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은 컨베이어벨트 자체가 아니라 컨베이어벨트를 중심으로 작업을 단순하게 분할한 생산조직상의 혁신이었다.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의 장기적 성장은 기술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과거와의 단절에 달려 있다.
그런데 새로운 산업과 상품이 나타내는 단절과 연속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단절이 있는 곳에 항상 연속이 있으며 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단절이라는 것은 과거의 어떤 것과 비교될 수 있는 한에서 단절이기 때문이다(비교란 서로 공통된 것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더구나 전적으로 새로운 산업과 상품은 사회에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시장에서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획기적인 기술도 발명품도 사회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에서만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상품이 가지는 과거와의 연속성 또는 이해가능성도 단절/차이만큼이나 중요한데, 기술에 이러한 제한을 가하는 것도 역시 사회문화와 규범 등이다.
이제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은 기술적, 사회적 측면에서, 과거와의 단절과 동시에 연속을 요구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단절과 연속 사이의 균형balance을 어떻게 맞추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절이나 연속 어느 쪽이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각각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단절, 즉 신기술/상품의 개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확실한 현재의 이윤을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는 것인 반면, 연속, 즉 현재의 산업 및 당장의 이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미래의 성장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비David Harvey가 지적했듯이, 자본 회전이 전반적으로 가속화되는 유례 없는 시공간 압축의 시대에도 회전시간이 느린, 장기적으로 투자되는 자본이 존재한다. 문제는 자동적으로 이러한 단절과 연속 사이의 최적 균형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격의 움직임을 통해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훌륭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가 옹호했던 시장조차도 비교적 먼 미래에 관해서는 잘못된 정보를 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따라서 시장을 통해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 사이의 최적 균형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둘 사이의 현실적인 관계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생기며, 그 결과는 장기적 성장과 단기적 수익 사이의 균형일 수도 있지만, 특히 개별 국가나 자본의 차원에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의 부족으로 인한) 장기적 몰락 또는 (무리한 장기적 투자 때문에 발생하는) 당장의 파멸도 심심치 않게 일어날 수 있다.
2. 지식기반경제의 시간적 성격과 모순
이제까지 논의한 관점에서 지식기반경제를 살펴 보자. OECD가 추진하는 지식기반경제도 자본주의 경제이며 따라서 이제까지 논의한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적 특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첫째, 20세기 후반의 정보/통신기술 혁명에 근거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는 가장 최근의 장기파동이자 시간적 단절/차이이다. 즉 대량생산-중화학공업으로 대표되는 구산업과 구별되는 새로운 정보/통신 산업이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로 PC, 게임기, MP3 플레이어,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등이 새로운 상품이자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에 더해 지식기반경제는 정보/통신기술이 기존의 산업(농업, 경공업, 중화학공업)에 있어서도 생산력을 증가시키고 부가가치를 증가시킨다(예: 인터넷의 활용, 전산을 통한 경영의 효율화 등).
둘째, 지식기반경제를 단지 기술이나 하드웨어의 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장기 파동에서 경제의 상승국면을 이끄는 혁신은 기술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발생한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정보/통신재의 확산도 라이프 스타일을 포함한 사회적인 변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며,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은 그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인 조직형태가 도입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주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은 이렇게 정보/통신혁명에 맞추어 변모된 사회를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라고 묘사한다. 탈산업사회에서는 비물질적인 서비스 경제가 발달하고, 지식노동자가 증가하며, 사회통제에 대한 지식의 습득과 혁신이 핵심적인 조직적 원리이자 전략이 된다. 심지어 경영학자 드러커Peter Drucker는 지식이 자본보다 더 중요한 생산요소가 된다고 까지 주장한다. 정보사회학자 카스텔Manuel Castells은 정보/통신기술 혁명에 부응하는 사회조직적 형태는 경계가 열려 있고 지식이 공유되며 활동이 분산되는 네트워크network이며, 이러한 조직형태는 지식/정보의 생산을 증대시킴으로써 기업과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혁명이 실제로 경제성장에 기여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네트워크라는 유연한 조직 형태가 도입하고 나서이다. 이렇게 볼 때 지식기반경제는 기술적 하드웨어뿐 아니라, 교육, 지식생산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발전을 수반한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는 소프트웨어에서도 성장의 동력, 즉 새로운 생산력과 상품을 찾는데, 여기에는 지식생산 그 자체 및 생산력에 대한 지식의 기여뿐 아니라, 지적재산권제도의 강화를 통한 지식/정보 상품화의 가속화도 포함된다. 현대 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지식/정보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복제가 용이하다. 둘째, (소설책이나 DVD 같이) 이미 본 내용, 특히 무료로 본 내용에 대해서는 돈을 주고 구입할 이유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셋째, 다른 보통의 상품의 경우 구매자는 그것을 전적으로 소유하지만 지식/정보의 경우 구매자는 오직 이용권만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구매자에게는 자기가 구입한 지식/정보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되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식/정보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상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복제, 무료사용, 전적인 소유를 금지하는 지적재산권제도에 의해서만 그럭저럭 돈을 받고 팔리는 상품행세를 할 수 있는 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y인 것이다. 사실 지적재산권 제도가 없던 과거에는 지식은 상품이 아니었고 아무도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미 오래 전에 정리된 셰익스피어의 시나 희곡에 대해서는 아직도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는 재산으로 보호 받지 않았던 것이 점점 더 보호를 받게 되고 더 많이 상품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것은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에 부합하는 사회적 변화, 즉 자본주의 체제가 성장, 아니 축적을 위해 만들어낸 과거와의 시간적 단절이라 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제도의 강화는 198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이나 전자공업 부문에서 일본/독일과의 경쟁에서 밀리던 미국에 의해 추진 되었으며, 미국의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등이 미국의 경쟁우위로서 소프트웨어, 영화 등 지식문화산업을 지목한 데서 연유한다.
셋째, 하지만 이 시간적 단절은 자본주의라는 보다 큰 연속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적재산권의 등장은 자본주의 내부에서는 단절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연장이요 지속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 또는 하비가 말하는 ‘강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 끊임 없이 일어난다. 이것은 본래는 사유재산이 아니었던 것이 비(非)시장적이고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 사유재산이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지식/정보의 상품화도 그런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비밀로 숨겨지거나 시공간적 제약으로 이용이 불가능했던 것들을 제외하면) 정보/지식의 대부분은, 이용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지적 공유물intellectual common이었으나 오직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자 재산intellectual property으로 등장하고 변환되게 되었다. 지식으로부터 재산으로의 폭력적 변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생물해적질bio-piracy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제3세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의학지식이나 종자를 화학적으로 분석하고 특허를 내는 행위로, 특허권자는 원래 이 지식이나 종자를 소유했던 이들에게 사용을 금지하거나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기막힌 상황이 초래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술혁신은 자본주의적으로 활용된다고 할 수 있다. 정보통신혁명 및 사회조직상의 혁신에 의해 지식의 생산과 유통은 쉬워졌지만, 지식은 결국 지적재산권에 의해 이윤을 내는 상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럼에도 지식은 본래부터 상품이 아니며 지적재산권에 의해 상품화가 되더라도 온전한 상품이 아닌 허구적 상품이 되는데 그칠 뿐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식기반사회에서의 상품으로서의 지식이 갖는 이 단절(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의 지식)과 연속(자본주의적 소유관계의 확장으로서의 지적 재산권)이라는 상반된 성격 사이의 균형의 문제이다. 앞에서 인용한 OECD 보고서(3)는 지적 재산권이 보호될수록 지식의 생산과 전파가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재산권의 보호가 경제발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제도라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을 지식의 발전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지적 재산권의 강화는 지식의 생산과 모순 관계, 또는 적어도 긴장 관계를 가진다. 지식의 생산은 단지 지적재산권의 보호 여부뿐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적재산권이 아무리 잘 보장되어 있어도 학교, 도서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지적, 교육적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는 지식 생산이 증가할 수 없다. 사유재산권이 아무리 잘 보장되어 있어도 공장이 없는 곳에서 공업생산이 증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더구나,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지식 생산에 투입되는 지식의 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오히려 지식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현대는 에디슨Thomas Edison이나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처럼 한두 명이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시대가 아니다. 거의 모든 고급 지식과 기술은 다른 곳에서 생산된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여 생산된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지식/기술 생산에 투입되는 다른 지식/기술의 조달에 드는 비용이 증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지식의 자유로운 이용이 제한됨으로써 지식생산의 양과 질이 저하될 수 있다. 이것은 비싸다는 이유로 꼭 필요하거나 좋은 재료를 쓰지 않을 경우 음식이 맛없게 되는 것과 같다. 카스텔이 지적했듯이 현대 ‘네트워크’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지식 생산에 정보기술뿐 아니라 지식이 사용되는 것이며, ‘네트워크’라는 조직형태는 지적재산권과 대조적으로 지식의 공유를 통해 지식 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지식 생산을 촉진시키는 것은 지적재산권 혹은 이윤동기뿐만 아니라 학교, 도서관, 인터넷 등과 같은 사회적, 지적 인프라 및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조직 형태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경제학자 제솝Bob Jessop은 자본주의 지식기반경제에는 지식 생산의 사회적인(=집단적, 협력적인) 성격과 지적재산권의 사적인 성격 사이의 모순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인간 생활을 더욱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생산력의 더 이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물론 지식산업발전의 필요성과 높은 지식생산비용 사이의 모순은, 기술과 지식의 공유를 목적으로 한 기업들간의 전략적 제휴나, 지식/기술을 국가적 차원에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국가 정책을 통해 관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전 사회에 여러 가지 형태로 고루 퍼져 있는 지식 및 잠재적 지식생산능력의 활용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저작권이 무서워서 블로그에 mp3 하나, 사진 한 장 마음 놓고 못 올리는 사회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문화와 지식의 생산이 있겠는가? 책 살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없게 하기 위해 도서관이 있는 게 아니던가? 이런 의미에서 지적재산권의 무조건적 강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적 지식기반경제 프로젝트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가치를 얼마간 증가시킬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질적 부의 증가에 족쇄를 씌울 것이다.
*이 글에서 부(富)는 화폐로 표시되는 경제적 가치가 아닌,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구체적 사용가치를 가리킨다.
<더 읽을거리>
프랭크 웹스터, <<정보사회이론>> 조동기 옮김, 나남, 1997
다니엘 벨, <<정보화 사회의 사회적 구조>> 이동만 옮김, 한울, 2002.
마뉴엘 카스텔,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김묵한 외 옮김, 한울 아카데미, 2003.
반다나 시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한재각 옮김, 당대, 2000.
<참고문헌>
Bell, Daniel. (1976) 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 A Venture in Social Forecasting. New York: Basic Books.
Castells, Manuel. (1996) The Rise of the Network Society. Cambridge: Polity Press.
Drucker, Peter. (1993)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이재규 옮김. 서울경제신문사.
Harvey, David. (2003) The New Imperial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국역: <<신제국주의>> 최병두 옮김, 한울, 2005]
Jessop, Bob. (2000) ‘The State and the Contradictions of the Knowledge-driven Economy’, pp. 63-78. In John Bryson et al. (eds.) Knowledge, Space, Economy. London: Routledge.
Marx, Karl. (1990/1991) <자본론 1 (상/하)>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OECD. (2000) Korea and the Knowledge-based Economy: Making the Transition, Paris: OECD.
Porter, Michael. (1990)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New York: Free Press.
Postone, Moishe. (1993) 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 A Reinterpretation of Marx's Critical Theo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 “지식기반경제는 지식이 기업, 조직, 개인 및 공동체에 의해 효율적으로 창조되고, 획득되고, 전달되는 경제로 정의된다.” (13쪽)
(3) “지식의 창조와 전파는 지적 재산이 존중되고 지적 재산에 대한 권리가 보호받고 강요되는 정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33쪽)
- OECD, Korea and the Knowledge-based Economy: Making the Transition, 2000 중에서.
위에 인용한 문장들은 한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 이른바 선진국들의 클럽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가 2000년 출판한 한국의 지식기반경제 전략에 관한 보고서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OECD가 지식기반경제론과 개별국가를 연결시킨 최초의 보고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는 요즘 지식기반경제론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현재 이 담론은 세계화와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가장 지배적인 경제-사회 담론의 하나이다. 이것은 그 이전부터 있었던 정보사회information society 또는 정보경제론의 최신판으로서, 위의 세 인용문은 담론으로서의 지식기반경제knowledge-based economy의 세 가지 특성, 즉 (1) 정보/통신기술과 지식이 핵심적인 요소이고 (2) 지식의 생산과 전달이 전 사회적으로 이루어지며 (3) 지식이 재산으로서 보호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식기반경제는, 지난 호에 설명했던 세계화와 더불어 자본주의적 시공간의 재구조화의 다른 한 측을 이루고 있다. 세계화가 자본축적을 위해 공간적 연결과 차이를 낳는 복잡한 과정이라면, 정보화/지식화는 시간적 연속과 차이를 낳는 복잡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먼저 이 간단하게 보이는 주장의 이해에 필요한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지식기반경제의 특성에 대해 설명하겠다.
1. 자본주의적 시간의 성격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축적의 메커니즘은 기본적으로 시간적 메커니즘이다. 첫째, 자본은 노동력에 지불하는 임금과 노동력이 노동을 통해 생산하는 상품의 가치의 차이로부터 잉여가치를 얻는데, 이것은 노동시간을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만큼 이상으로 절대적으로 늘림으로써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둘째, (노동통제의 강화를 포함한) 생산방식의 효율화와 혁신은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상대적 노동시간을 줄이고 단위 시간당 생산되는 상품의 수를 늘린다. 이를 통해 증가되는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불렀다.
그런데, 상품의 가치가 추상 또는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노동가치론의 관점에서 볼 때, 단위시간당 상품생산량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그 상품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1개 만드는데 1시간 걸리는 100원짜리 상품이 어떤 기업에서는 기술혁신으로 1개 만드는 30분 밖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고 하자. 그 기업은 1시간에 2개를 만들어 동일한 100원씩 받고 팔아 다른 기업보다 시간당 더 많은 수익을 올리거나 개당 판매 가격을 90원이나 80원으로 내림으로써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게 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기업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신기술을 추격하고 도입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상품 생산에 드는 사회적 평균 노동시간이 이전에 비해 절반이 됨을 의미하며, 결국 상품 가치가 절반, 즉 50원으로 하락하게 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최초 기술혁신을 했던 기업의 경쟁우위가 사라진다. 따라서 포스톤Moishe Postone이 지적하듯이, 경쟁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기업에게 다시금 기술혁신의 압력이 가해지게 된다. 기술혁신의 효과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 기업은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기술혁신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을 위해 새로운 것을 계속 요구하며, 이런 의미에서 시간적 단절, 즉 옛 것과 새 것의 차이를 계속 창출함으로써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가 신기술에 의한 과거와의 단절과 차이의 생성에 의해 성장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적 순환, 즉 상승과 하강에서도 보여진다. 러시아의 경제학자 콘드라티에프Nikolai Kondratieff는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이 50-60년 주기로 상승과 하강을 거듭하는 ‘장기 파동long wave’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슘페터Joseph Schumpeter와 프리만Chris Freeman과 같은 제도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순환의 주요 원인을 기술혁신으로 파악한다. 기술혁신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공정의 혁신이고 다른 하나는 제품의 혁신이다. 전자는 같은 제품을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기술적 혁신이며, 후자는 더 큰 가치를 갖는 새로운 제품의 개발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기존 산업 내에서의 제품 혁신과 기존 산업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류의 제품개발로 나뉠 수 있다. 여기서 후자, 즉 새로운 산업의 형성을 낳는 기술혁신이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의 부침을 설명하는 주요한 요인인 것이다. 간단히 말해 시장이 포화되고 성장이 둔화됨에 따라 기술혁신에 의해 신산업이 개척되고 새로운 상품이 등장함으로써 새로운 수요, 시장, 부가가치가 창출됨으로써 경제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기술혁신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회문화 및 조직상의 변동이 먼저 또는 적어도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문화와 조직형태가 도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기술 자체가 사회적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포드Ford라는 자동차 회사로 대표되는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것은 컨베이어벨트 자체가 아니라 컨베이어벨트를 중심으로 작업을 단순하게 분할한 생산조직상의 혁신이었다.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의 장기적 성장은 기술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의 과거와의 단절에 달려 있다.
그런데 새로운 산업과 상품이 나타내는 단절과 연속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단절이 있는 곳에 항상 연속이 있으며 또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단절이라는 것은 과거의 어떤 것과 비교될 수 있는 한에서 단절이기 때문이다(비교란 서로 공통된 것이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더구나 전적으로 새로운 산업과 상품은 사회에서 이해될 수 없는 것이며 따라서 시장에서 팔리지도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획기적인 기술도 발명품도 사회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에서만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산업/상품이 가지는 과거와의 연속성 또는 이해가능성도 단절/차이만큼이나 중요한데, 기술에 이러한 제한을 가하는 것도 역시 사회문화와 규범 등이다.
이제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은 기술적, 사회적 측면에서, 과거와의 단절과 동시에 연속을 요구한다는 것이 분명해졌을 것이다. 여기서 생기는 문제는 단절과 연속 사이의 균형balance을 어떻게 맞추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단절이나 연속 어느 쪽이 지나치게 강조된다면 각각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위태롭게 되기 때문이다. 단절, 즉 신기술/상품의 개발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확실한 현재의 이윤을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를 선택하는 것인 반면, 연속, 즉 현재의 산업 및 당장의 이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미래의 성장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비David Harvey가 지적했듯이, 자본 회전이 전반적으로 가속화되는 유례 없는 시공간 압축의 시대에도 회전시간이 느린, 장기적으로 투자되는 자본이 존재한다. 문제는 자동적으로 이러한 단절과 연속 사이의 최적 균형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격의 움직임을 통해서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가장 훌륭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가 옹호했던 시장조차도 비교적 먼 미래에 관해서는 잘못된 정보를 줄 가능성이 매우 크며, 따라서 시장을 통해 현재의 이익과 미래의 이익 사이의 최적 균형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둘 사이의 현실적인 관계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서 생기며, 그 결과는 장기적 성장과 단기적 수익 사이의 균형일 수도 있지만, 특히 개별 국가나 자본의 차원에서는 (미래에 대한 투자의 부족으로 인한) 장기적 몰락 또는 (무리한 장기적 투자 때문에 발생하는) 당장의 파멸도 심심치 않게 일어날 수 있다.
2. 지식기반경제의 시간적 성격과 모순
이제까지 논의한 관점에서 지식기반경제를 살펴 보자. OECD가 추진하는 지식기반경제도 자본주의 경제이며 따라서 이제까지 논의한 자본주의 경제의 일반적 특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첫째, 20세기 후반의 정보/통신기술 혁명에 근거하고 있는 지식기반경제는 가장 최근의 장기파동이자 시간적 단절/차이이다. 즉 대량생산-중화학공업으로 대표되는 구산업과 구별되는 새로운 정보/통신 산업이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로 PC, 게임기, MP3 플레이어,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등이 새로운 상품이자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에 더해 지식기반경제는 정보/통신기술이 기존의 산업(농업, 경공업, 중화학공업)에 있어서도 생산력을 증가시키고 부가가치를 증가시킨다(예: 인터넷의 활용, 전산을 통한 경영의 효율화 등).
둘째, 지식기반경제를 단지 기술이나 하드웨어의 문제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장기 파동에서 경제의 상승국면을 이끄는 혁신은 기술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발생한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정보/통신재의 확산도 라이프 스타일을 포함한 사회적인 변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며, 정보/통신기술의 활용은 그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문화와 사회적인 조직형태가 도입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보수주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은 이렇게 정보/통신혁명에 맞추어 변모된 사회를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라고 묘사한다. 탈산업사회에서는 비물질적인 서비스 경제가 발달하고, 지식노동자가 증가하며, 사회통제에 대한 지식의 습득과 혁신이 핵심적인 조직적 원리이자 전략이 된다. 심지어 경영학자 드러커Peter Drucker는 지식이 자본보다 더 중요한 생산요소가 된다고 까지 주장한다. 정보사회학자 카스텔Manuel Castells은 정보/통신기술 혁명에 부응하는 사회조직적 형태는 경계가 열려 있고 지식이 공유되며 활동이 분산되는 네트워크network이며, 이러한 조직형태는 지식/정보의 생산을 증대시킴으로써 기업과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정보통신기술혁명이 실제로 경제성장에 기여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네트워크라는 유연한 조직 형태가 도입하고 나서이다. 이렇게 볼 때 지식기반경제는 기술적 하드웨어뿐 아니라, 교육, 지식생산 등 소프트웨어 측면의 발전을 수반한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는 소프트웨어에서도 성장의 동력, 즉 새로운 생산력과 상품을 찾는데, 여기에는 지식생산 그 자체 및 생산력에 대한 지식의 기여뿐 아니라, 지적재산권제도의 강화를 통한 지식/정보 상품화의 가속화도 포함된다. 현대 사회에서 상품으로서의 지식/정보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첫째, 복제가 용이하다. 둘째, (소설책이나 DVD 같이) 이미 본 내용, 특히 무료로 본 내용에 대해서는 돈을 주고 구입할 이유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셋째, 다른 보통의 상품의 경우 구매자는 그것을 전적으로 소유하지만 지식/정보의 경우 구매자는 오직 이용권만 가지게 된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구매자에게는 자기가 구입한 지식/정보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되팔아서 돈을 버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식/정보는 온전한 의미에서의 상품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복제, 무료사용, 전적인 소유를 금지하는 지적재산권제도에 의해서만 그럭저럭 돈을 받고 팔리는 상품행세를 할 수 있는 허구적 상품fictitious commodity인 것이다. 사실 지적재산권 제도가 없던 과거에는 지식은 상품이 아니었고 아무도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미 오래 전에 정리된 셰익스피어의 시나 희곡에 대해서는 아직도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에는 재산으로 보호 받지 않았던 것이 점점 더 보호를 받게 되고 더 많이 상품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것은 정보통신기술의 혁신에 부합하는 사회적 변화, 즉 자본주의 체제가 성장, 아니 축적을 위해 만들어낸 과거와의 시간적 단절이라 할 수 있다. 지적재산권제도의 강화는 198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이나 전자공업 부문에서 일본/독일과의 경쟁에서 밀리던 미국에 의해 추진 되었으며, 미국의 경영학자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등이 미국의 경쟁우위로서 소프트웨어, 영화 등 지식문화산업을 지목한 데서 연유한다.
셋째, 하지만 이 시간적 단절은 자본주의라는 보다 큰 연속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적재산권의 등장은 자본주의 내부에서는 단절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연장이요 지속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 또는 하비가 말하는 ‘강탈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by dispossession’이 끊임 없이 일어난다. 이것은 본래는 사유재산이 아니었던 것이 비(非)시장적이고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 사유재산이 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지식/정보의 상품화도 그런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비밀로 숨겨지거나 시공간적 제약으로 이용이 불가능했던 것들을 제외하면) 정보/지식의 대부분은, 이용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지적 공유물intellectual common이었으나 오직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거래될 수 있는 상품이자 재산intellectual property으로 등장하고 변환되게 되었다. 지식으로부터 재산으로의 폭력적 변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생물해적질bio-piracy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제3세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의학지식이나 종자를 화학적으로 분석하고 특허를 내는 행위로, 특허권자는 원래 이 지식이나 종자를 소유했던 이들에게 사용을 금지하거나 사용료를 부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는 기막힌 상황이 초래된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술혁신은 자본주의적으로 활용된다고 할 수 있다. 정보통신혁명 및 사회조직상의 혁신에 의해 지식의 생산과 유통은 쉬워졌지만, 지식은 결국 지적재산권에 의해 이윤을 내는 상품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럼에도 지식은 본래부터 상품이 아니며 지적재산권에 의해 상품화가 되더라도 온전한 상품이 아닌 허구적 상품이 되는데 그칠 뿐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지식기반사회에서의 상품으로서의 지식이 갖는 이 단절(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의 지식)과 연속(자본주의적 소유관계의 확장으로서의 지적 재산권)이라는 상반된 성격 사이의 균형의 문제이다. 앞에서 인용한 OECD 보고서(3)는 지적 재산권이 보호될수록 지식의 생산과 전파가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재산권의 보호가 경제발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제도라는 신자유주의의 주장을 지식의 발전에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지적 재산권의 강화는 지식의 생산과 모순 관계, 또는 적어도 긴장 관계를 가진다. 지식의 생산은 단지 지적재산권의 보호 여부뿐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관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지적재산권이 아무리 잘 보장되어 있어도 학교, 도서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지적, 교육적 인프라가 없는 곳에서는 지식 생산이 증가할 수 없다. 사유재산권이 아무리 잘 보장되어 있어도 공장이 없는 곳에서 공업생산이 증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더구나,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지식 생산에 투입되는 지식의 조달 비용을 증가시켜 오히려 지식 생산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 현대는 에디슨Thomas Edison이나 라이트 형제Wright Brothers처럼 한두 명이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개발하는 시대가 아니다. 거의 모든 고급 지식과 기술은 다른 곳에서 생산된 지식과 기술을 사용하여 생산된다. 따라서 지적재산권의 강화는 지식/기술 생산에 투입되는 다른 지식/기술의 조달에 드는 비용이 증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지식의 자유로운 이용이 제한됨으로써 지식생산의 양과 질이 저하될 수 있다. 이것은 비싸다는 이유로 꼭 필요하거나 좋은 재료를 쓰지 않을 경우 음식이 맛없게 되는 것과 같다. 카스텔이 지적했듯이 현대 ‘네트워크’ 사회의 특징 중 하나는 지식 생산에 정보기술뿐 아니라 지식이 사용되는 것이며, ‘네트워크’라는 조직형태는 지적재산권과 대조적으로 지식의 공유를 통해 지식 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에서 지식 생산을 촉진시키는 것은 지적재산권 혹은 이윤동기뿐만 아니라 학교, 도서관, 인터넷 등과 같은 사회적, 지적 인프라 및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조직 형태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정치경제학자 제솝Bob Jessop은 자본주의 지식기반경제에는 지식 생산의 사회적인(=집단적, 협력적인) 성격과 지적재산권의 사적인 성격 사이의 모순이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인간 생활을 더욱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생산력의 더 이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물론 지식산업발전의 필요성과 높은 지식생산비용 사이의 모순은, 기술과 지식의 공유를 목적으로 한 기업들간의 전략적 제휴나, 지식/기술을 국가적 차원에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국가 정책을 통해 관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전 사회에 여러 가지 형태로 고루 퍼져 있는 지식 및 잠재적 지식생산능력의 활용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저작권이 무서워서 블로그에 mp3 하나, 사진 한 장 마음 놓고 못 올리는 사회에서 어떻게 창의적인 문화와 지식의 생산이 있겠는가? 책 살 돈이 없어서 공부 못하는 학생이 없게 하기 위해 도서관이 있는 게 아니던가? 이런 의미에서 지적재산권의 무조건적 강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적 지식기반경제 프로젝트는, 단기적으로는 경제적 가치를 얼마간 증가시킬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질적 부의 증가에 족쇄를 씌울 것이다.
*이 글에서 부(富)는 화폐로 표시되는 경제적 가치가 아닌,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구체적 사용가치를 가리킨다.
<더 읽을거리>
프랭크 웹스터, <<정보사회이론>> 조동기 옮김, 나남, 1997
다니엘 벨, <<정보화 사회의 사회적 구조>> 이동만 옮김, 한울, 2002.
마뉴엘 카스텔,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김묵한 외 옮김, 한울 아카데미, 2003.
반다나 시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한재각 옮김, 당대, 2000.
<참고문헌>
Bell, Daniel. (1976) The Coming of Post-Industrial Society: A Venture in Social Forecasting. New York: Basic Books.
Castells, Manuel. (1996) The Rise of the Network Society. Cambridge: Polity Press.
Drucker, Peter. (1993)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이재규 옮김. 서울경제신문사.
Harvey, David. (2003) The New Imperialism.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국역: <<신제국주의>> 최병두 옮김, 한울, 2005]
Jessop, Bob. (2000) ‘The State and the Contradictions of the Knowledge-driven Economy’, pp. 63-78. In John Bryson et al. (eds.) Knowledge, Space, Economy. London: Routledge.
Marx, Karl. (1990/1991) <자본론 1 (상/하)> 김수행 옮김. 비봉출판사.
OECD. (2000) Korea and the Knowledge-based Economy: Making the Transition, Paris: OECD.
Porter, Michael. (1990) Competitive Advantage of Nations. New York: Free Press.
Postone, Moishe. (1993) 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 A Reinterpretation of Marx's Critical Theo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by | 2006/05/29 05:07 | 실험실 | 덧글(16)





이 점에서 베블렌의 "자본의 본성" 논문에 나오는 "자산"의 개념이 21세기에 대단히 적실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의 표현으로, 자산의 본질적 성격은 "공동체 전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일부를 "독점(cornering)"하는 것이고, 거기에 필요한 유형 무형의 장비가 바로 자본이라는 것이죠.
지적재산권 문제도 요즘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주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쓰신 글 중에 지식생산자에 대한 보상 문제가 빠져 있는 것 같아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누리꾼(네티즌)들은 지식/정보의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생산자로 변모해가고 있고, 이들의 지적생산물에 대한 저작권과 경우에 따라서는 보상의 문제까지 제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블로거'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지만, 이를테면 돈없는 인디밴드의 음악을 mp3 복제를 통해 무상으로 공유하는 경우에는 보상의 문제가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물론 mp3의 확산을 통한 인지도 향상과 같은 이득도 있을 수 있겠죠.)
돈많고 대기업적인 지식생산자들보다 돈없고 가내수공업적인(말하고나니 요즘 UCC와 잘 어울리는 말이네요;;) 지식생산자들의 저작권이나 보상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럼 안녕히계세요...
현 시점에서 볼 때 지적 생산에 대한 보상이나 저작권 자체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본적 인권과 관련될 수 있는 문제(예: 질병치료 의약품)에 관한 지적재산권 행사, 또는 공유물을 사유재산화하여 독점함으로써 인류의 복지와 문명의 발전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지적재산권 행사는 마땅히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인권에 관련된 지적재산권 행사, 생물해적질과 같은 행위들에 대해서는 저도 선생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요즘 바쁘신가보네요. 바쁘시더라도 건강 챙기시고 안녕히계세요~
잘 보고 갑니다^^
머리속 한켠에 있던 어두운 부분 한 곳이 환해진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아담 스미스도 그렇고 고전 명인들이 참 뼈있는 말을 많이 해요..
카나리아 / 토마스 제퍼슨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지만, 아마 그 당시에는 그게 상식이었을 겁니다 :)
스톨만이 대학에 있을때에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는 돈주고 사는거라기보다 그냥 공유하는 물건이었는데, 그가 기업에 고용되어서 프로젝트를 수행할때는 그게 상품으로 바뀌게 되고, 기업주는 스톨만이 마음에 안든다고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지적 재산권' 이라는 이름하에 뺏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맡겼죠. 그래서 거기에 분노하고 지적 재산권의 모순을 느끼면서 FSF를 세웠다나 뭐라나..
primitive accumulation 이랑 꽤 닮아 있다는게 섬뜩했어요.
랄까 저도 저런 문제들 때문에 여기 글들 같은 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터이라..
특히 최근의 기술유출 방지법으로 이공계들을 괴롭히는것도 참..슬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