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세계화/지구화, 거역할 수 없는 것인가? 실험실

“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2005년 12월 21일 APEC 공로자 초청오찬에서)
“저는 세계화는 ‘표준화’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날 인류는 국가의 틀 안에서 각자의 가치관(로컬 스탠더드)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울타리를 허물고 공통된 가치관(글로벌 스탠더드)을 갖자는 것입니다.” (이명박, “세계와 전방위 네트워크 구축해야: 국제화재단 창립 10주년에 부치는 축사” (2004년)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세계화’의 원년을 선언한 1995년으로부터 벌써 11년이 흘렀다. 당시만 해도 이 말이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와 무엇이 다른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한 정치인도 있었지만, 이제는 각종 정치적 수사(修辭)에 단골로 쓰이는 말이 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 활동 현장에서도 당연시 되는 하나의 전제가 되었다. 이 글의 독자들도 대부분 이 이른바 ‘세계화’의 시대에 교육을 받아왔을 것이며, 앞으로 이 말을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그럼 이 ‘세계화’란 과연 무엇일까?

세계화는 globalization의 번역어이다. 그러므로 다른 말로는 ‘지구화’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지구globe라는 명사가 타동사화된 globalize를 다시 명사화한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문화, 정치 등) 어떤 사회적 활동의 반경이 전세계적 혹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 혹은 그러한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가리키며, 특히 경제적 세계화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하버드 경영대 교수 씨어도어 레빗 Theodore Levitt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May-June, 1983: pp. 2-11)>>에 기고한 “시장의 세계화(The Globalization of Markets)”라는 논문에서 최초로 등장했다고 한다. 레빗은 기술발전의 결과, (1)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어 하나가 되었고, (2) 시장이 전세계로 확대되었으며 (3) 이것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계가 긴밀히 연결되고 시장이 세계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관념적 수준에서나 현실적 수준에서나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미 1848년에 <공산주의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대공업은 아메리카의 발견이 준비해 놓은 세계 시장을 만들어 내었다. […] 자신의 생산물의 판로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욕구는 부르주아지를 전 지구상으로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도처에 뿌리를 내려야 하며, 도처에서 정착하여야 하고, 도처에서 연계를 맺어야 한다.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 세계체제론도 세계는 자본주의의 출발부터 긴밀히 연결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월러스틴Wallerstein은 16세기 자본주의의 성립부터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중심부와 여기에 종속되어 시장과 원료를 제공하는 주변부와 반주변부로 이루어진 세계체제world system이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아리기Arrighi도 20세기 후반 금융자본의 세계적 이동을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논리에 필연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즉 자본의 궁극적인 목적이 화폐의 획득이라면, 산업 생산 그 자체는 부차적인 의미를 가질 뿐이며, 따라서 자본은 이윤율이 하락할 때 산업부문에서 금융부문으로 이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허스트와 톰슨 Hirst and Thompson 등의 실증적 연구도 이미 1905년 이전 제국주의하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에서도 이미 현대에 비견될만한 자본의 이동이 있었음을 보여주며, 세계화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국제화의 심화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지난 호에서 설명한 시공간 거리화와 압축(사회관계의 지리적 팽창과 거리의 단축)의 개념은 이러한 현상을 이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이 가리키는 것은 자본축적에 의해 추동되는 세계화가 최근의 흐름이든 오래된 흐름이든지 간에 모든 사회에 하나의 압력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압력이 존재한다고 해서, 앞에서 인용된 정치인들의 수사에서처럼, 개별 사회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한다거나, 세계화가 어떤 경우에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세계화란, 그것이 사회적 과정인 한, 하나의 자연적이고 불변적인 독립변수가 아니라 인간이 집단적으로 통제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화란 단순히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며, 따라서 다른 현상을 설명하는 독립변수이기 이전에 먼저 설명되어야만 하는 종속변수이다. 이러한 것을 은폐하는 정치인들의 수사는, 와이스Linda Weiss가 지적했듯이 자신들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자신들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영미식 자본주의적 표준의 도입 및 시장개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세계화는 세계 역사에서 하나의 새로운 국면이며, 더구나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분명히 거역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세계화는 단순히 19세기 제국주의나 20세기 중반 국제화의 심화와 등치 될 수 없다. 국제화란 무역, 투자와 자본의 이동으로 나타나는 국민국가간 inter-national 거래의 증가를 가리키는 반면, 세계화는 경제활동 등이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 초국적trans-national의 형태로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특히 경제적 측면에서 이것은 (생산, 유통 등) 넓은 의미에서의 노동의 사회적 분업이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섬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세계화는 초국적 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s의 등장과 활동을 수반한다. 국제화 하에서의 기업 모델이 완제품을 수출하는 기업 또는 (각각의 지사가 자신이 위치한 국가 내에서만 상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s이라면, 초국적 기업의 모델은, 지리학자 피터 디킨Peter Dicken의 설명대로 각 지사가 현지 실정에서 제일 유리한 조건(특히 가격)에 생산한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완제품이나 부품을 서로간에 교환하여, 생산과 판매를 세계화하는 것이다. 여러 다른 나라에 위치한 생산공장들이 각각 생산공정의 한 단계를 맡거나, 또는 각자 부품생산 공장으로 기능하고 최종 한 곳에서 부품을 조립하여 생산하는 등 경제활동의 다양한 공간적 조직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화는 시공간의 재구조화이자 그것의 특정한 형태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에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압력 또는 시장의 전세계적 확대로서의 단순한 세계화 개념 또는 시공간 거리화와 압축의 개념은 그 자체로는 이러한 시공간의 재조직화에 대한 통찰력을 주지 않는다. 세계화 과정이 구체적인 사회적, 경제적 활동인 한,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곳들을 서로 연결시키지도 않고 그곳들 사이의 거리를 모두 같은 정도로 단축시키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서울과 토쿄와의 사회적, 경제적 관계는 서울과 최남단의 마라도와의 관계보다 더욱 더 긴밀하다. 실제로 지구적 수준에서도 세계화는 북미, 유럽, 동아시아에 편중화되어 있으며, 교역도 각 지역 내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렇게 보면 세계화는 시장의 세계적 확대보다는 지역적 확대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가장 잘 두드러지게 나타나 곳은 화폐통합까지 나아 간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지만, 북미(NAFTA)나 동아시아(ASEAN+3를 계승한 동아시아 정상회담EAS)에도 이러한 흐름은 발견된다. 또한, 세계화는 국경에 인접한 지역간의 경제적 통합을 수반하기도 한다. 이것은 중앙정부가 지방에 권한을 이양하는 지방화localization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불균등함은 경제적 발전의 지리적 불균등성과 관련이 있다. 이윤이 싸게 사고 비싸게 파는 것에서 생기는 한, 즉 생산비와 판매가격 사이의 차이에 의존하는 한, 자본축적은 가라타니 고진이 지적한 것처럼 생산요소 가격이나 품질의 시간적, 공간적 차이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노동력의 고용 비용과 나중에 노동력이 생산한 생산물의 가격간의 시간적 차이, 또는 노동력, 토지, 원료, 자금 등의 가격/특성의 지리적 차이를 이용하는 것이다. 국가나 기업은 이러한 차이를 적극적으로 창출하고 유지하려고 하며 이것이 경제의 지리적 불균등 발전의 한 요인이다. 예를 들면, 1960-80년대의 한국의 국가는 낮은 수출상품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노골적인 노동탄압을 통해 임금상승을 억제하려고 반면, 수입장벽을 통해 국내 기업들이 국내 소비시장에서 독점적 이윤을 얻도록 하였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세계화에는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을 동질화시키는 경향뿐만 아니라 차별화를 촉진시키거나 기존에 존재하는 차별성을 유지시키는 경향도 있다. 그러므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서구 기준에 맞춘 일방적인 세계화라기보다는 서구문화/기준과 지역문화/기준의 혼합이며, 외부의 문물과 문화는 지역적인 맥락 속에서 수용되고 소화된다.

이제 이렇게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도 국가, 지역, 문화 간의 차이가 여전히 유의미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우리는 세계화 이외에도 다른 대안적인 시공간구조가 있을 수 있으며, 또한 세계화 자체에도 각 국가, 지역, 문화의 독특한 맥락을 반영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산업 생산조직에 있어서 노동력의 질보다는 가격을 중요시하고 금융자본의 영향력이 강한 미국의 경우는 제조업체의 해외이전 및 금융자본의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노동력의 질을 중시하고 제조업의 영향력이 강한 일본의 경우는 제조업의 해외 이전에 보다 신중할 수 밖에 없다. 한편 유럽의 경우는 초국적 기업 전략보다는 위에 언급한 (국가 경계 내에서 생산과 판매가 완료되는) 다국적 기업 전략이 상당히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특징이자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로 불리는 국가개입의 축소, 탈규제, 투자자유화, 사유화, 시장개방도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는 것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에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부문(예: 방위, 정보통신산업 등)의 경우에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외국인에 쉽게 사유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계화란 다양한 형태를 띠는 시공간의 초국적적인 재구조화의 과정이다.

결국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란, 미국 및 그에 동조하는 강대국들, 초국적 자본,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 등 초국적 통치기구들이 소수의 이익을 마치 필연적인 것처럼 약소국에 강요하는 시장개방 및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른 구조조정의 과정이자 결과로서 하나의 특수한 정치경제적 프로젝트이자 전략인 것으로 설명된다. 그것은 그냥 주어진, 우리의 미래를 기계적으로 설명할 독립변수가 아닌 것이다. 세계화는 필연적이지 않으며 투쟁과 협상에 달려 있다. 물론 이들이 가진 힘이 막강하기 때문에 보기에 따라 마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불가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과 같은 상당한 경제규모의 국가에서 그것을 더욱 더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특정한 세계화의 논리에 동조하고 협조하는 국내의 정치인들과 관료, 자본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화를 하면 이익을 보고 세계화 하지 않으면 손해 본다는 정치인들과 기업의 논리를 그냥 받아들이지 말고, 먼저 도대체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볼지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한다.

더 읽을거리

구춘권. (2000)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 책세상.
장시복. (2003) <<세계화 시대 초국적 기업의 실체>> 책세상.
월든 벨로. (2004) <<탈세계화: 새로운 세계를 위하여>> 잉걸.

참고문헌

Arrighi, Giovanni. (1994) The Long Twentieth Century: Money, Power and the Origins of Our Times. Verso.
Dicken, Peter. (2003) Global Shift, 4th Edition: Reshaping the Global Economic Map in the 21st Century. Sage Publication
Hirst, Paul and Graeme Thompson. (1999) Globalization in Question: The International Economy and the Possibilities of Governance, 2nd Ed. Polity Press.
Ji, Joo Hyoung. (1998) Globalization and the Nation-State: A Strategic-Relational Approach. Unpublished MA Thesis, Sociology Department, Lancaster University, UK.
Karatani, Kojin. (1999)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김경원 역, 이산.
Levitt, Theodore. (1983) “The Globalization of Markets” Harvard Business Review (May-June): pp. 2-11.
Marx-Engels. (1997) “공산주의당 선언”,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1>>. 최인호 외 역. 박종철 출판사.
Ruigrok, Winfried and Rob Van Tulder. (1995) The Logic of International Restructuring. Routledge.
Wallerstein, Immanuel. (2005)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 이광근 역, 당대.
Weiss, Linda. (1998) The Myth of the Powerless State: Governing the Economy in a Global Era. Polity Press [국역: <<국가몰락의 신화: 세계화 시대의 국가운영>>, 박형준 역, 일신사, 2002].
이명박. (2004) 세계와 전방위 네트워크 구축해야: 국제화재단 창립 10주년에 부치는 축사 http://webzine.klafir.or.kr/read.htm?middle_title_no=231
파란뉴스. (2005) “세계화는 대세…. 양극화 해소 위해 노력할 것”. http://news.paran.com/cwd/newsview.php?dirnews=2948155&year=2005&theme=871
Peter Dicken on TNC


 


덧글

  • 아나똘리 2006/04/04 23:30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탈규제-신자유주의 정책에서 "Bolkestein amendment"라는게 있던데, 혹시 설명을 좀 부탁드려도 될지...

    http://www.iht.com/articles/2006/04/03/news/edpfaff.php
    에서 봤습니다~
  • pepe 2006/04/05 03:04 # 답글

    고맙습니다. Bolkestein amendment에 대해서는 저도 처음 봤습니다. 신문기사에 이미 설명이 되어 있는 것 같은데, 구글을 검색해보면 이번에 그것이 삭제되기 전까지는 EU 내에서 기업이 본국법의 규제를 받게 되어 있었는데, 그렇게 하면 더 못사는 나라에서 더 잘 사는 나라로 온 다국적 기업들이 그 나라에서 규정하는 것보다 더 낮은 임금과 더 열악한 조건에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 조항을 이번에 삭제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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