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국가의 어원 실험실

국가(國家)라는 말은 매우 애매한 말이다. 여기에는 이미 두 가지의 뜻이 들어 있다. 하나는 ‘나라’ 이고 다른 하나는 입법부, 사법부 및 기타 준 정부 기관까지 포괄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정부’이다. ‘국가’라는 말은 처음에는 맹자의 ‘천하국가’라는 표현 속에 등장했는데, 사실 이것은 하늘 아래 있는 나라(제후국 또는 봉토)와 집안(귀족가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점차 ‘국’과 ‘가’가 합쳐서 하나의 단어가 되어 조선 전기에는 왕실을, 후기에는 양반사회와 구별되는 조정이나 관청을 가리키게 되었다. 개화기에 들어서면서 이 말은 여전히 ‘정부’를 가리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사회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의 조류 속에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민, 정부, 영토의 종합체인 ‘나라’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런데 얼핏 생각하기에는 맥락에 따라 ‘국가’라는 말이 둘 중에서 어느 것을 가리키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국가라는 말 속에 이 두 가지 개념이 혼재되고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따라서 하나 없이 다른 하나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애국’ 또는 ‘국가에 충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정부’에 충성하는 것인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인가? 정답은 후자인 것 같다. 그러나, ‘정부’가 없다면 ‘나라’도 없다. 예를 들면 ‘망국(亡國, 나라를 잃었다)’이라는 말은 실제적으로 독립적, 주권적 정부가 없어졌다는 것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대한제국은 그 정부가 조선총독부로 교체되었을 때 나라를 잃고 멸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에 대한 충성은 언제나 부분적으로는 (‘정권’에 대한 충성과는 구별되는) ‘정부’에 대한 충성일 수 밖에 없다. 역으로 ‘나라’가 없다면 ‘정부’도 있을 수 없다. 즉 자신의 고유한 영토, 인구에 대한 지배와 대표성에 관한 주장을 하지 않는 정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비록 실제로 통치하는 영토, 인구를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분명히 한반도와 그곳에 살고 있는 인구를 배타적으로 ‘대표’하려고 했다. 물론 그럼에도 정부는 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나라의 기타 다른 부분과는 구별되는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예를 들면, 정부가 엄격히 규제하는 교과과정에 의해 수업을 진행하고 역시 정부가 직접 주관하는 대학입시에 대비한 학습이 진행되는 중등교육기관들은 정부의 통치기능을 일부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 만약 오늘 정부가 공적 의료보험체계를 완전 폐지하고 사적인 의료보험체계로 전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어제는 정부의 영역이었던 것이 오늘은 바로 시장의 영역이 된다.

이러한 애매함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즉 서양의 국가state라는 말도 ‘나라’와 ‘정부’ 중 어느 것이든지 가리킬 수 있는 말이다. 단 차이가 있다면 동양에서는 그 한자풀이(나라 ‘國’ + 집 ‘家’)에서 볼 수 있듯이 ‘나라’가, 그리고 서양에서는 ‘정부’가 ‘국가’의 일차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 편이라는 점이다. 서양에서 state는 원래는 상태, 특히 신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정치권력이 신분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14세기 신분제 정체(政體) polity of estates 시기 이후 그 의미가 변모하게 된다. 즉 통치자의 신분state의 유지와 그들이 지배하는 영토내의 일의 상태states of affairs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영토내의 상태를 잘 관리하고 유지하는 것이 곧 신분의 일이 되고 국가의 일affairs of the state이 되었던 것이다.

덧글

  • 생활의발견 2006/02/11 05:40 # 답글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입니다. 다만 한 가지 외람된 질문이겠습니다만 이 글을 님께서 직접 자료조사후 쓰신건지요? 제가 이 분야 관심이 많아서요.
  • pepe 2006/02/11 12:04 # 답글

    이전 페이지에서 '전문 다운로드'를 클릭하셔서 글을 받으시면 말미에 자세한 참고문헌이 나뫄 있습니다.
  • J 2016/03/01 01:49 # 삭제 답글

    혹시 국은 왕과 관료, 가는 귀족 호족 제후가문을 뜻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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