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 선생님에 대한 추억

암투병 소아마비 수필가 장영희 교수 별세

http://www.donga.com/fbin/output?rss=1&n=200905090227


오늘 학과 동기로부터 문자로 장영희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학위를 받은 이후로 여러가지 일(강의, 연구소 일 등)로 계속 심적 여유가 없었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언제 내가 번역했던 책(<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인문학 스터디> 등)을 들고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병원에서 투병중이셨던 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2년 전쯤에 학교에서 멀리 목발 짚고 걸어가시는 선생님 모습을, 인사도 차마 못하고 멀리서 본게 그 분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되고 말았다. 다소 숫기 없는 나로서는 대학 4년 (그러니까 사회학과에서 복수전공을 하기전 영문과 학생이었던 기간) 동안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을 뿐만 아니라, (영어로든 국어로든) 내 글쓰기의 틀을 잡아주신,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베스트 티쳐셨는데, 학위 받고 귀국하고 시간도 꽤 지났건만 게으름탓에 한번 찾아 뵙지도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나쁜 학생이 되고 말았다.


기억을 돌이켜 보건대, 나는 장영희 교수님에게 다음의 세 과목을 들었다. 고급영작문 (1992년 1학기), 논문작성법 (1992년 2학기), 20세기 미국소설 (1993년 2학기). 


영문과 2학년의 고급영작문과 논문작성법은 매우 어려운 난코스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장영희 선생님 반이 제일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과목 다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교수도 있었지만) 수업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었다. 고급영작문의 경우에는 한 학기 동안 문학을 주제로 3-5쪽 분량의 페이퍼를 13-4번 낸 것으로 기억한다. 술 먹고 놀다 들어와서는 다음날 제출하기 위해 새벽에 술 취해서 쓴 기억을 포함해 아무튼 이 때 밤새기를 정말 밥먹듯이 했다. 뿐만 아니라 학기 말에는 저널(일기)도 써서 제출해야 했다. 물론 선생님은 모든 제출물을 읽고 논평을 해주셨다. 특히 페이퍼의 경우는 초고를 내면 수정해서 돌려주고, 두번째도 역시 일일히 수정하여 돌려주셨다. 빨간펜으로는 틀린 문법을 교정해주시고, 파란펜으로는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주시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접 면담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해 주시기도 했다. 


당시 나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철학적 개념(실존주의, 절망... 등등)을 마구 남발하며 헤밍웨이의 단편 등에 문학비평을 쓰고는 했다. 설명을 달지 않은 까닭은 물론 잘 몰랐기 때문이다. 잘 모르면서도 철학으로 폼은 잡고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이런 나에게 '왜' 그런지 설명하라는 지적을 하셨다. 그리고 불분명한 부분을 보다 명확하게 쓰라고도 지적을 하셨다. 그 이후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항상 '왜' 그런지 설명을 하려고 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왜'에 너무 강박이 되는 바람에 'because'라는 말을 남발하여 학기 말쯤에는 내 글이 "하늘은 파랗다. 왜냐하면..."이라는 식으로 필요 없는데도 "왜냐하면"이라는 말을 붙인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였지만, 영국에서 어느 교수로부터 영국사람들보다 더 영국적으로 쓴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 생긴 습관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싶다. 


선생님은 매 학기 가르친 학생들의 사진을 기념으로 찍어 두시고는 하였는데, 당시 우리 반 학생들은 아무 생각도 없이 선생님이 사진 찍을 때 포즈만 잡고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사진을 다 찍고 나자, 다른 반 학생들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고 실망을 표시했던 기억이 난다. 그제서야 몇 학생이 같이 찍자고 그랬지만 이미 삐져버리신 선생님은 같이 사진 찍기를 거부하셨었다. 나를 포함해서 참으로 철없는 학생들이었고, 그게 나한테는 생각할 때마다 아직도 미안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아아, 이 때부터 이미 나는 나쁜 학생이었던 것이다. 


다음 학기에도 나는 힘들어도 배울 것이 많다고 판단하여 선생님이 가르치시던 <논문작성법>을 신청하였다. <논문작성법>에서 나는 참고문헌 찾기, 참고문헌과 각주 작성, 메모카드 작성... 등 논문작성의 전과정을 배웠다. 나는 지금 사회학 과목을 듣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이 내용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당시 키스터 신부님이 가르치시던 <영문학 형태론>이라는 과목도 듣고 있었는데, 과제로 영시를 써서 내야 했다. 내가 쓴 영시가 형편 없는 점수를 받자, 나는 등단한 시인이신 아버지의 시를 영어로 번역해 내는 꼼수를 부렸다. 그러나, 이 또한 기대했던 만큼의 점수를 받지 못했다. 아무리 번역이란 공을 들였어도 어떻든 내 글을 내지 않았으므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해 마땅하나, 나는 당시에 좋지 못한 점수를 받은 까닭이 박사도 아직 못 받고 문학이 뭔지도 잘 알지도 못하는 시간강사가 채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도 좋은 까닭은 단지 그 시가 원래 프로가 쓴 것이라서가 아니라 장영희 선생님께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장영희 선생님께 제출한 다른 과제에 이 시가 나도 모르게 잘못 끼어들어갔는데, 선생님은 과제도 아니었지만 그 시의 멋진 글귀에 nice!라는 평을 달아주셨던 것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그 당시 내 친한 친구가 방황하면서 이 과목에 계속 들어오지 않았을 때, 선생님께 나한테 하신 말씀이다. 왜 그 친구에게 연락해서 나오라고 하지 않냐고. 서강대는 학점의 2배 (2학점인 경우 4시간)를 초과해서 결석하면 F를 준다. 내 친구는 F를 이미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그 때 선생님은 아마 F를 바로 주지 않고 기다렸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친구와 친한 내게 연락해서 다시 들어오게 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 때 수업시간에 나를 훈계하시면서 하신 말씀, "What are friends for?" 친구란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가? 친구로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한 말씀으로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나쁜 학생일 뿐 아니라 나쁜 친구이기도 했던 셈이었다. 물론 나는 그 친구에게 계속 학교에 나오라고 연락하고, 그럼에도 그 친구는 학교에 안나왔었던 것이긴 했지만, 그 친구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집에 한번 찾아가 보지도 않고 결국에는 손을 놓았었기 때문이다.


이 수업에 대해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은 물론 이 과목에서도 선생님은 우리들의 사진을 찍으셨다는 것이다. 이 때는 물론 우리 학생들은 선생님과 사진 같이 찍자고 하였다. 그러나 1학기 때 이미 지적을 받아서 그렇게 말씀드리는 것 같아서 여전히 속이 찜찜하긴 마찬가지였다. 



<20세기 미국소설>은 내가 장영희 선생님께 한국어로 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수업이다.  당시 다뤘던 텍스트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아>였다. 중간고사를 보는데 마지막에 기찬 문제가 나왔다. 이 책이 왼쪽면에서 끝나는지 오른쪽 면에서 끝나는지 맞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선생님은 영문으로 다 읽지 않고 번역본에 의지하는 학생들(그래서 영어영문학과가 아니라 '국어영문학과'라는 농담도 있었다)에게 경각심을 주려고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로 국어로 영문학을 읽었던 나는 시험직전에 원서의 마지막 부분을 운좋게 펼춰봤던 덕에 그 문제를 맞췄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수업시간에 제임스 딘 주연의 <에덴의 동쪽>과 로버트 레드포드와 미아 패로우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를 비디오로 시청했던 기억도 나는데, 당시에는 너무나 지겨워 죽을 지경이었다. <위대한 개츠비>는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들고서야 영국에서 다시 한번 TV로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그 때서야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었다. 하지만 나의 텀페이퍼는 <위대한 개츠비>에 관한 것이었다. 개츠비가 미국의 실용주의적 가치관의 폐해를 지적하는 소설이라고 해석하는, 다소 야심찬 내용의 논문이었는데, 선생님은 나의 이런 도발적인 해석에 근거가 약하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나는 장영희 선생님께 A를 받아 본 적이 없다. 항상 B+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어떤 정도의 점수인지 나는 모르겠다. 당시 서강대 기준으로는 나쁜 점수는 아니었겠지만). 나중에 나는 이 페이퍼를 고쳐서 졸업 논문으로 제출하였다. 당연히 장영희 교수님을 지도교수님으로 하고 싶었지만, 당시 그 분은 영문과 교수가 아니라 교양과정부 교수였다. 그리하여 다른 교수에게 논문을 낼 수 밖에 없었다(그 분은 넉넉하게 A학점을 주셨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나서도 학교를 계속 다녔기 때문에 나와 장영희 선생님이 만날 기회가 한번 더 있었다. 1996년 말에 사회학과 대학원을 중퇴하고 영국의 석사과정에 지원하게 되었는데, 그 때 선생님께 추천서를 부탁드렸던 것이다. 추천서를 써달라면 귀찮아서 학생들더러 써오라는 교수들도 많은데, 당시 나는 운좋게도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었다. 장영희 선생님께서도 직접 그 유려한 영 문장으로 매우 후한 내용의 추천서를 써주셨다. 나는 이 추천서에서도 몇 가지 영어 표현들을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내가 장영희 선생님과 교류한 것은 1999년 초가 마지막이다. 사회학 석사과정을 끝마치고 1998년 12월 나는 잠시 한국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기억에는 안나지만 당시 학교에 갔다가 선생님과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때도 나는 선생님께 인사를 제대로 못드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영국에 돌아가고 나서 이메일을 드린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나중에 선생님 수업을 듣고 있던 학생들에게 그 내용을 소개하셨다는 답장을 보내셨다(안타깝게도 그 메일은 내게 남아 있지 않다). 열심히 영작문 공부해서 나처럼 되라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내 영어실력은 선생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게으르고 악한 학생은 그 이후로 선생님을 찾아 뵙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이 먼 발치에서 한번 보았던 것 빼고는. 이제는 후회하고 상심해도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1999.1.30 장영희 선생님께 보냈던 편지

by pepe | 2009/05/10 04:05 | 실험실외부 | 트랙백(5) | 덧글(5)

로이 바스카,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로이 바스카 지음,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 이기홍 옮김, 서울: 후마니타스, 2007, 380쪽 ISBN 978-89-90106-3-8.

세계가 실재한다는 주장은 언뜻 너무 상식적이어서 누구의 흥미도 끌기 힘들어 보인다. 사실상 세계의 실재를 부인하는 사람—심지어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스트까지 포함해서—은 거의 없다. 세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이미 실재하는 것으로 상정된 어떤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과학적 탐구도 실재에 대한 탐구라는 점에서 이미 실재(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다. 만약 실재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픽션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실재론자이다. 그렇다면 “실재를 다시 주장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실재하는 세계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다른 답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간 (사회)과학철학과 방법론을 지배해 온 실증주의 및 협약주의/해석학은 각각 실재를 개인적 경험 및 집단적 관념으로 귀결시킴으로써, 존재론을 인식론으로 환원한다. 그 궁극적 결과는 과학에서의 인과적 필연성의 개연성으로의 대체(실증주의), 존재론적 상대론(협약주의), 혹은 사회과학에서의 인과적 설명의 부정(해석학) 등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현실의 과학실천과 지식은 인과적 필연성과 객관적 존재에 대한 설명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과학에 대한 해석(과학철학)과 과학의 자기 해석(과학실천) 사이의 이러한 궁극적 불일치는 마치 과학철학 없는 과학활동(맹목적인 객관주의적 실천)이나 과학활동 없는 과학철학(공허한 상대주의적 이론) 중 하나를 택할 것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과학전쟁’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자들과 과학철학자/사회학자들 사이에는 이러한 간극이 종종 발견된다. 그리하여 과학이 전제하는 실재의 특성들, 즉 인과성, 필연성, 객관성 등은 한편에서는 (경험주의적)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순전히 약속에 불과한 것 또는 최악의 경우 자기 기만적인 것으로 폄하된다.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은, 그것을 단순히 객관주의의 일파로 짐작하던 사람에게는 놀랍게 들리겠지만, 이 양극단을 극복하려 한다. 그것은 존재론과 인식론의 구별을 통해, 전자에서 인과성, 필연성 등으로 구조화된 실재가 과학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조건임을 역설하고, 후자에서는 (모든 믿음이 동등하게 타당하다는 판단적 상대주의judgmental relativism와 구별되는) 인식론적 상대주의epistemological relativism 및 오류가능주의fallibilism를 받아 들인다. 다시 말해 비판적 실재론은, 과학실천이 전제할 수 밖에 없는,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의 자리를 과학철학에 복원하는데, 이에 따르면 실재를 인식으로 환원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지식의 우연성, 상대성, 오류가능성은 도리어 불가피한 것이다. 이렇게 비판적 실재론은 객관주의적 과학실천과 상대주의적 과학철학의 대립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로이 바스카의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은, 종종 비판적 실재론 그 자체와 동일시되기까지 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직접 이러한 이론적 혁신들을 살펴 볼 수 있는 책이다. 바스카는 자신의 과학철학을 원래 ‘초월적 실재론transcendental realism’이라 불렀는데, 이는 그가 칸트처럼 인간의 인식 또는 과학적 탐구의 조건(가능성과 한계)를 규명하려는 ‘비판철학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답을 이성이 아닌 존재에서 찾는다는 것을 나타낸다. 즉 그는 본래 의미 그대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마치 지동설처럼 “실재에 대한 인간중심적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제9장). 그에 따르면 모든 과학은 존재의 성질에 대한 암묵적인 가정을 가지고 있고, 세계에 대한 양립 불가능한 해명들의 경쟁은 존재론 차원의 해결을 요구하므로, 존재(론)은 인식(론)으로 환원될 수 없다(제8장).

그러므로 그는 과학이 가능 하려면 과학의 대상, 즉 실재는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를 묻는다. 바스카는 여기서 실재를, 분화되지 않고 상호 필연적 관련도 없는 원자들로 구성된 폐쇄체계라기 보다는, 일정한 힘을 보유하면서 상호 관련되고 분화된 기제, 관계들로 구성된 개방체계로 개념화한다. 그러므로 과학의 탐구대상 중 하나인 인과법칙은 실증주의에서처럼 경험적 규칙성으로부터 도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칙을 구성하는 ‘실재’하는 구조, 기제, 관계들은 규칙적으로 ‘현실’화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그것들이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경험’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력이 작용하더라도, 사과가 항상 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지지는 않으며, 떨어질지라도 그것을 누군가가 항상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제2장). 이러한 실재-현실-경험의 존재론적 구별과 그에 따른 과학에 대한 탈실증주의적 재규정은 특히 사회과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과학의 대상이 상위, 즉 실재 수준의 인과법칙이라면, 사회과학에서 현실-경험 수준의 규칙성이 발견되지 않는다거나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인과적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스카는 사회과학의 대상이 비록 변동하는 인간의 실천, 개념 및 시공간적 조건에 의존하는 해석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자연과학과 기본적으로 같은 방법론을 채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비판적 자연주의critical naturalism’를 제창한다(제5장).

실증주의와 해석학의 이분법에 익숙한 이들에게 비판적 실재론은 낯설게 느껴지거나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짧은 논문들 속에서 철학적으로 혁신적인 논의들을 압축적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더욱 읽기 어려운 책으로 느껴질 것이다. 더구나. 저자의 입장은, 과학에서 ‘경험’과 ‘해석’이 차지하는 역할을 과소평가하거나 적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그럴지라도 <<비판적 실재론과 해방의 사회과학>>은 최상의 지적 도전을 제기할 것임에 분명하다.

* 이 글의 축약판이 <교수신문> 제426호, 2007년 2월 5일자에 실림.

by pepe | 2007/02/09 03:27 | 실험기자재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종합과 분석의 방법

간단히 말하면, 방법의 관점에서 종합이란 서로 다른 것들을 묶어서 (전체로) 보는 것을 말하고, 분석이란 하나의 것(전체)을 부분으로 작게 쪼개어 각각을 고찰해 봄을 말한다. 분석과 종합의 엄밀한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것은 칸트였는데, 예를 들면 종합명제란 상호 외적인 개념들 사이에 관계를 지어 만든 명제이고, 분석명제란 어떤 개념 내에 이미 포함된 개념을 뽑아내 만든 명제이다(따라서 종합명제란 그 참 거짓이 경험에 달려 있는 명제이고, 분석명제란 주어에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어 경험과 무관하게 참인 명제이다). 그러므로, 종합이 1) 큰 틀에서, 총체적/전체적 관점에서 사물을 파악하는 관점을 취하고 2) 그것은 서로 무관하거나 다르게 보이는 것들을 서로 ‘연관’ 짓는 방법이라면, 분석이란 ㄱ) 부분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는 관점을 취하고 ㄴ) 서로 같거나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서로 다른 것들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각자의 방법론으로부터 나오는 독창적 업적의 성격도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종합적 방법/접근법을 선택한 경우에는 많은 자료 수집과 더불어, 자료들간의 잘 보이지 않는 관계를 밝히고 그것들을 함께 묶는 데서 독창성이 나올 수 있으며, 분석적 방법/접근법을 선택한 경우에는 자료의 수집보다는 기존에 동일한 것들로 묶여진 자료들을 엄밀히 세분하는 데서 독창성이 나올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각각 종합과 분석의 방법에 있어서 최선과 진부한 또는 최악의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최선의 분석적 태도는 ‘차이’에 민감하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같거나 동일한 것들 사이의 차이를 포착한다. 이러한 차이의 포착은 이론을 정교화하고 엄밀화하면서 오류에 빠지지 않게 해줄 뿐 아니라, 기존에 간과되었던 메커니즘 등을 발견함으로써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에 있어서 노동과 노동력의 구별은 자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한편 최선의 종합적 태도는 ‘연관성’ 또는 ‘관계’에 민감하다. 즉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 관계 없거나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들 사이에 연관성이나 공통된 어떤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며, 그것들을 전체 맥락 속에 위치시켜 총체적 관계 속에서 이해한다. 이것은 새로운 문제를 설정할 수 있게 해주고 새로운 (인과)관계를 파악하게 하며 심지어는 새로운 ‘분류법/체계=세계관’에 도달할 수도 있게 해 준다. 예를 들면, 자본을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해 단순히 생산수단, 화폐 등의 사물로 보는 분석적 접근법은 자본이 사실은 사회관계 속에 위치한 것이라는 것을 감추지만, 만약 자본을 다른 것, 특히 노동력과의 관계 속에서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자본의 운동, 축적과정을 인과적,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간단히 말해, 이러한 최선의 분석과 종합의 방법이야 말로 최선의 독창성에 이르는 방법이다.

반면 진부한/최악의 분석적 방법은 단지 기존의 전형적 분류체계에 따라, 전체를 부분으로 나눈다. 그 결과 기존의 분류체계에 대한 어떠한 도전도 하지 않는다. 즉 진부한 분석은 특정 분류체계 내에서 동일하게 보이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파악하지 못한다. 대신 차이를 분별하지 못하고 이거나 저거나 다 같은 것으로 보는 비엄밀성만이 판치게 된다. 이러한 분석 방법은 매우 편하고 쉬운 방법으로, 이런 능력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분석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반면 이와 연관되어 진부한/최악의 종합적 방법은 단지 하나의 사전에 미리 취한 관점을 가지고 통념상 비슷해 보이거나 동일해 보이는 것들을 서로 연관 짓거나 묶는 것에 그친다. 즉 진부한 종합은 주어진 전형적인 분류체계 내에서 다르고 서로 무관하게 보이던 것들을 서로 연관 짓지 못한다. 이러한 종합 방법 역시 매우 편하고 쉬운 방법으로, 이런 능력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종합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면, 익히 알려진 대륙철학과 영미철학, 혹은 경험론과 합리론이라는 거친 구별을 습관적으로 적용해 모든 철학을 평가하려는 것과 같은 태도, 플라톤 이후로 하나도 새로운 것은 없다는 식의 오만 등이 그러한 진부한 종합과 분석법을 예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약하면 진부한 분석과 종합은 결국 기존의 통념적 분류체계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고 그것에 맞추어 모든 것을 나누고 연관을 지으며, 결국 그것에 순응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학문은 하나의 제의/의식ritual이 된다.

세부적인 메커니즘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회)과학도들은 분석, 즉 차이를 포착하는데 능하고, 독서를 많이 하고 자료를 많이 모으는 인문학도들은 종합, 즉 공통된 본질을 포착하는데 능한 경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의 능력이라도 제대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 그리고 당연히 두 가지 능력을 다 가지고 있는 경우는 더욱 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일급의 학자란, 서로 같거나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엄밀히 구별해 내는 능력과 서로 다르고 무관하게 보이는 것들을 연관해 생각해 낼 줄 아는 능력 둘 다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현실을 면밀히 살피면서 ‘정말 그것들은 서로 같은(또는 연관된) 것들인가, 정말 그것들은 서로 다른(또는 무관한) 것들인가’를 계속 자기 자신에게 골치 아프게 묻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자신이 종래 가지고 있는 통념에 대해 성찰적으로 도전해야 하므로, 진정한 학문의 길이란 자신의 정신적 평온을 해치는 괴로운 길이 되기 쉽다. 그래서 천재들이란 불행한 게 아닐까?


초고: 2006.4.17
퇴고: 2007.1.23/28/31, 2.1

덧.

by pepe | 2007/02/01 16:52 | 실험실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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